특수와 보편 사이
특수와 보편 사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2.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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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물리치료과 학생들은 2학년 겨울방학 때 논문을 한편씩 써야 한다. 논문을 써 봄으로서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주제를 잡고 선행 논문이나 참고 문헌을 참고삼아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3월에 발표하려면 이번 겨울방학 내내 몸과 마음이 바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방학도 없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들을 실험을 통해 증명하려고 노력했음에도 발표 때가 되면 으레 그 결론에 따라붙는 서술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 결론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실험한 결과는 일부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이므로 특수한 상황에서의 진실일 뿐 모든 상황에서 적용되는 보편적인 진실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특정한 상황에서는 진실이지만 이것을 일반화시켜 버리면 거짓이 되는 경우를 ‘일반화의 오류’라고 한다. 학생들이 논문을 쓰게 하는 것도 그래서다. 작은 근거를 바탕으로 하나의 이론을 일반화시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급격히 증가한 텔레비전 건강프로그램에서는 이런 일반화의 오류가 빈번하게, 대개는 의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프로그램이 범하는 일반화의 오류과정은 대개 다음과 같은 패턴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어떤 비방(秘方)으로 난치병이나 불치병을 고쳤다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었는지 조금은 과장되게 그때의 상황을 재현한다.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이 최고조에 이를 때 쯤 그 비방을 공개한다. 대개는 음식이나 건강식품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대개 초기 진단의 진실성을 검정하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한다. 또 비방의 처방도 구체적이지 못하다. 여기서 끝난다면 그 비방은 그 환자만의 특수한 상황에 적합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시청자가 따라 하고픈 욕구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건강프로그램에는 반드시 특수를 보편으로 바꾸어주기 위한 장치가 존재한다. 대개는 전문가 그룹들로 구성된 패널들의 배치이다. 의사, 한의사, 관련 학과 교수, 무슨 박사 등 일반인들의 신뢰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전문가들이 동원돼 음식이나 건강식품에 들어있는 성분들의 효과를 학문적으로 설명한다. 물론 절대로 비방 때문에 그 환자의 병이 나았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냥 비방 속에는 이런 성분들이 들어있는데 그 성분들은 인체에 이렇게 이롭게 작용한다고만 설명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례자의 난치병에 대한 극적인 치유 경험담 다음에 나오는 전문가의 일반론적인 설명은 시청자들에게 모호했던 진단명을 확실한 불치병으로 믿어지게 하고, 비방이 불치병을 치유하게 할 수 있었던 과학적, 학문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으로 비친다. 이렇게 하여 특수는 보편으로 바뀌고, 보다 극적으로 보편화에 성공한 비방은 신드롬이 된다. 한동안 광풍처럼 몰아치다 새로운 비방이 등장하면 만병통치일 것 같은 그 비방은 또 언제나처럼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져버리지만.

건강은 전부다. 의사의 영향력이란 절대적이다. 국민들이 믿는 건강전문가는 특수를 어물쩡 보편처럼 포장시키는데 동원되는 그런 사람은 아닐 것이다. 진정 국민의 건강을 위한다면 시청률을 의식한 일부 건강 프로그램에 얼굴을 팔아 국민을 오도하는 일에 이용되는 경우는 피해야 한다. 지금 방송되고 있는 건강관련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예능 프로그램이다. 생명이 오락 프로그램의 대상은 아니지 않은가!

<최순호 울산과학대 물리치료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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