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회-12. 칼은 살아서 말한다(2)
125회-12. 칼은 살아서 말한다(2)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3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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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쪽 변경을 지키는 산성은 운라산성, 예리산성, 노고산성, 본관산성 등이 있고 아국(我國)과의 접경지역에 미숭산성과 만대산성이 있사옵니다.”

상수위가 말을 더듬었다.

“그렇게 많은 산성들이 줄줄이 서 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허망하게 한 순간에 뚫리고 말았단 말이냐?”

진수라니왕의 말은 탄식과 다르지 않았다.

“이들 산성에서 차출되어 관산성 전투에 참전한 병사들이 대거 전사하여 병력이 비워졌기 때문인 걸로 여겨집니다. 궁궐을 비롯한 여러 건물과 조서문도 다 불타 버리고 이미 왕궁은 거의 폐허로 변했다고 합니다.”

연락 군관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직 애송이인 사다함에게 그렇게 당하다니, 가라의 군병들이 오합지졸이었단 말인가?”

왕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다함은 비록 열다섯의 어린 나이이나 풍월주에 올랐고 송출정가(送出政歌)라는 시까지 지어 주며 마음을 담아준 미실이라는 계집의 힘이 컸다고 합니다.”

“당치 않는 소리. 까짓것 일개 계집아이의 힘이 어떻게 작용하였단 말이냐?”

“사다함이 아직 하늘도 열리지 않은 캄캄한 새벽, 그것도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시간을 택했던 것도, 도설지왕 전하가 후궁의 품안에서 잠들어 있을 시간을 택했던 것도 미실이라는 그 계집이 사다함에게 일러준 계책이었을지 모른다고 하옵니다.”

연락군관의 말이 불경하게 들렸다. 그러나 진수라니 왕은 그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낙동강을 건너고 회천을 넘어올 때까지 가라의 파수병들은 신라군병의 이동을 모르고 있었단 말이더냐?”

왕의 말이 신경질적으로 들렸다.

“도성 외곽을 지키는 도진산성엔 관산성 전투시에 병력이 빠져나가고 군장 하나와 초병만 몇 명 남아 있고 성은 비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비워진 산성이라니? 관산성 전투 시에 빠져나간 병력의 빈자리가 아직 채워지지 않고 있었단 말이냐?”

진수라니 왕은 스스로의 말에 놀랐다. 그 말에 더 놀란 것은 상수위였다. 관산성 전투에 빠져 나가서 전사한 그 병역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라국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다라국의 주력부대 중에 하나인 준치산성과 청패산성, 그리고 가라국의 접경지역에 있는 진벌성의 병력이 아직 절반도 채워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수위는 진수라니왕의 표정을 살피다 할 말을 잃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겠구나…….”

진수라니 왕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끄떡였다.

“군장은 잠에 떨어져 있었고 초병들은 마침 휘몰아친 비바람을 피해 성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고 하옵니다.”

“어쩌면 자업자득이라고 해야겠구나. 어쩌면 말이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왕의 마음을 읽은 상수위가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자업자득 치고는 그 결과가 너무 참혹합니다.”

글=이 충 호 / 그림=­황 효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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