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고 기억하는 방법
잊지 않고 기억하는 방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2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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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타니? 커피탑니다.”

짧은 이 문장은 요즘 방송을 타고 있는 유명 브랜드 커피의 광고 카피다. 가을에는 따뜻한 커피 한잔이 생각난다는, 장삿속이 밉지 않게 엿보이는 센스 있는 문장이다. 기럭지 우월하고 잘생긴 훈남 모델이 나와서 기억을 오래 가게 하는 건지 커피를 마실 때면 이 카피가 저절로 떠올라서 광고효과 하나는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극히 사소한 것이지만 이렇듯 기억이라는 것은 반복학습을 통해 뇌 속에 자리 잡는다.

얼마 전 세월호 수색작업이 종료됐다. 세월호 참사 209일만의 일이다. 추운 날씨와 기상악화로 잠수사들이 또 희생될지도 모른다는 유족들의 우려와 배려가 컸다고 한다. 바다 밑에는 찾지 못한 아홉명의 넋들을 둔 채로. 유족들의 자진철수라는 단어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내 일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귀로 듣지 못하면 금방 잊어버리는 게 사람들의 기억에 대한 한계다.

에빙하우스란 학자는 ‘학습된 것’이 잊혀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그래프로 나타냈다. 에빙하우스는 이 ‘망각곡선’ 실험을 통해 학습된 것의 50%는 1시간 이내에 망각되고 70%는 1일 이내에 80%는 한달 안에 잊혀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또 반복학습을 한 것의 약 50%는 한달 이내에도 망각되지 않는다는 것과 한달 이상 유지된 지식은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망각곡선을 떠올리며 세월호 참사를 공익광고로 만들어 후손들에게까지 절대 잊혀지지 않게 하는 건 어떨까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텔레비전을 틀 때마다 세월호 참사 공익광고가 나오면 안전 불감증에 대한 망각을 최소화할 수 있을 테니까 두번 다시 이런 어처구니가 없는 일은 겪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국민의 정서란 이름으로 우리는 대형 참사들의 비극을 너무 빨리 잊으려한다. 어떤 이들은 먹고 살기도 바쁜데 아픈 과거들을 들추어낸다고, 그만큼 했으면 이제 됐지 않느냐고 오히려 세월호 유족들을 나무라기도 한다. 정부에서는 상처를 빨리, 대충 덮으려고 극약처방을 쓰거나 내성이 강한 스테로이드연고 같은 것만 자꾸 덧바르고 있는 건 아닌가. 하지만 고름은 절대 살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되풀이되는 대형사고로 겪었음을.

얼마 전부터 땅을 보고 걷는 버릇이 생겼다. 판교 환풍기 사건의 여파 때문일 것이다. 길바닥에는 생각보다 많은 맨홀이 깔려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낙엽을 밟는 낭만을 느끼기보다 내가 디디고 서 있는 이 곳이 지뢰밭 같다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도심 군데군데 공사장은 왜 그리 많은지. 안전펜스조차 치지 않고 길을 가로막고 있는 곳도 허다하다. 공사현장을 지나면서 머리 위에 무언가 떨어질 것 같아 모골이 송연해진다. 우리네 땅에서 목숨 내놓고 땅을 밟아야 하는 서글픈 현실이 가을볕을 외면하게 만든다.

어느 지방의 축제현장에서도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며 피켓을 든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가로수마다 달린 노란 리본은 언제, 어디서든 잊지 않겠다는 무언의 아우성으로 나부끼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잊고 살았던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박종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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