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과 배리 끝
처용과 배리 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17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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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되풀이 되는 일상생활 속에서 가끔은 눈과 귀가 행복해지는 공연이 있어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지난 2일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창작소리극인 김미경의 ‘上男子 처용’이 공연을 하고, 같은 날 울주문화예술회관에서는 창작무용극인 ‘배리 끝 애화’가 젊은 춤꾼들의 춤사위로 공연을 한다고 해서 평소 생각을 하는 우리 지역의 이야기인 ‘처용’과 ‘배리 끝’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게 되었기에 기대를 가지고 공연날을 기다렸다. 처용은 오후 5시에, 그리고 배리 끝 애화는 오후 7시에 공연을 하기에 둘을 다 보려면 바쁘게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상남자 처용을 보면서 처용이 누구일까를 많이 생각했고, 그가 전하는 야기의 속뜻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것은 처용에 대한 글을 써보기 위해서이다. 많은 시간을 생각만 하고 있지만 조만간 그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볼 계획이다.

처용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새롭게 풀어내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했다. 처용의 이야기를 기다린 사람이 많았는지 공연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흥겨운 여흥을 뒤로하고 급히 배리 끝의 이야기를 만나러 갔다.

처용과 마찬가지로 배리 끝 이야기는 우리 고장의 이야기이다. 처용은 고등학교 때 책에서 만났고, 슬픈 배리 끝의 이야기는 ‘울산울주지방민요자료집(1990년·울산대학교출판부)’ 발간을 위해 1982년부터 구비문학(口碑文學)을 조사할 때 만나게 되었다.

배리 끝 이야기는 노동요(勞動謠)로써 주로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모심기 노래다. 당시 조사방법은 조사원이 직접 현지를 답사하여 그 지역의 제보자를 만나 직접 녹음기로 채록을 한 후 이를 전사(轉寫)하여 정리를 하는 방식이라 녹음한 내용을 전사를 한다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것은 당시의 녹음기로는 좋은 음질이 어려웠고, 또 전부 사투리라서 그 말의 뜻을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이 들었다.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지금 우리가 이 구비문학을 채록해 놓지 않으면 영영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열심히 조사하고 정리했다.

조금씩 노동요를 혼자서 흥얼거리며 구연자들을 만나 채록을 하다 어느 날 배리 끝이란 노래를 듣게 되었다.

“낭창낭창 베리끝에 / 무정하다 울오라바

난도죽어 후승가서 / 낭군님 먼저 섬길라네” (울산울주지방민요자료집 p97)

이 노래를 듣고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아 구연자에게 물었다. “할머니, 이 노래는 슬픈 노래 같은데요?”라고 물어보니 그 노래의 사연을 이야기 해주었다.

“시누이와 올케가 강에서 빨래를 하는데 갑자기 큰물이 두 사람을 덮쳤는데 이를 본 오라비가 누이동생인 자신보다 아내인 올케를 먼저 구하고 자신은 물살에 떠내려갔다. 떠내러 가면서 부른 노래인 것이여. 참 딱한 이야기지”라고 노래의 사연을 전해준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가끔 태화강을 산책하다보면 절벽아래 배리 끝 이야기가 있었다는 안내 표지판을 본다. 그때마다 저 깊은 의식 속에는 불쌍하게 죽은 시누이가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그녀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망설이고만 있다. 그 이야기는 나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 처용과 배리 끝의 이야기를 써야지만 능력이 없어 우물쭈물 거리고만 있다.

우리 고장 울산의 이야기 두 편을 본 그 날은 안타까움과 초조함을 나에게 주었다. 안개 속에 숨어 있는 처용과 할 말이 있는 오빠와 그 동생의 이야기를 이제는 누구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봉대 울주옹기종기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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