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없이 은퇴한 남자는 ‘5덩어리’
준비없이 은퇴한 남자는 ‘5덩어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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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영과 고용관행은 1997년 ‘외환위기’를 시작으로 혁명적 변화를 겪었다. 외환위기 전에는 퇴직이 곧 은퇴(隱退)였지만, 이후에는 정년퇴직과 별도로 명예퇴직, 이른바 명퇴가 추가됐다. 이후 명퇴는 ‘지금 잠시 물러나는’ 금퇴(今退), 또는 ‘위로금을 받고 물러나는’ 금퇴(金退)로 분화됐다.

그런데 요즘 매일 거실에서 빈둥거리는 ‘공포의 거실 男’, 온종일 잠옷 차림에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를 엿듣는 ‘파자마 맨’, 어디를 가나 따라다니는 ‘정년(停年) 미아’, 하루 세끼 밥 차려줘야 하는 ‘삼식(三食)이’가 요즘 넘쳐난다고 한다. 은퇴한 한국 남성들의 초라한 현실을 절묘하게 풍자한 말들이다.

“한국의 고령화는 거의 혁명과 같다”는 존 헨드릭스 미국 노인학협회장의 말처럼 우리사회의 은퇴속도와 고령속도는 가히 우려할 수준이다. 나이 들어 가장 필요한 것이 뭐냐고 물었더니 여자는 돈, 남자는 배우자라는 답이 나왔다고 한다. 이게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니고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 한가’ 라는 한 설문조사에서 나온 결과다. 남편은 ‘아내가 있어야 행복한 노후가 된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아내는 남편보다 돈이 우선이라는 이야기다.

이러다 보니 남편이란 존재는 이래저래 ‘골치 덩어리’ 또는 ‘애물 덩어리’가 됐다. 특히 퇴직하고 돈 벌이 없이 집에만 있으면 영락없는 애물덩어리요 ‘5덩어리’가 되기 십상이다. ‘5덩어리’란 ‘집에 두고 오면 근심 덩어리, 같이 나오면 짐 덩어리, 혼자 내 보내면 걱정덩어리, 마주 앉아 있으면 웬수 덩어리, 아내가 먼저 가면 며느리한테 구박 덩어리’를 말한다.

최근 사실상의 실업률이 처음으로 발표돼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통계에 가려져 나타나지 않았던 실제 통계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고용 통계에서 제외된 ‘숨겨진 실업자’를 포함할 경우 우리나라 실업률이 10%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소 정부가 발표했던 수치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이번에 발표된 지표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해 10월 마련한 국제기준에 따른 것이다. 이 기준에 따라 지표가 발표된 국가는 한국이 처음인데 우리니라 통계청이 공식 발표한 지난해 10월 실업률은 3.2%였다. ‘숨겨진 실업자’가 기준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명퇴 확산에 맞물려 아버지와 아들이 취업고시(就業考試) 경쟁 대상이 되고 있다. 일자리를 두고 아버지와 아들이 경쟁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건 약과다. 급기야 일하는 50세 이상이 20~30대보다 많아진 상황에 이르렀다. 세대갈등의 한 장르로 취업갈등이 등장할 판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러다보니 졸업장이 ‘백수증명서’ 또는 ‘실업자증명서’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백수’들은 직장을 못 구해 결혼을 포기하고 아이를 ‘못 낳는 것’이 아니라 ‘안 낳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우리는 이들을 ‘삼(3)포세대’라 부른다.

우리세대의 슬픈 자화상(自畵像)이다. 지금은 사람이 곧 자원인 시대다. 인구 문제와 취업률 제고는 국가 생존과 직결된 것이다. 특히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국가적 위기의 지표다. 그러니 누가 나서야겠는가.

젊은 세대들이 일자리를 갖고 자신들의 미래를 구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쪽은 당연히 국가와 기업이다. 여기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명퇴까지 겹쳐 새로운 양상의 갈등조짐조차 보인다. ‘신 세대갈등’을 넘어 공감사회로 가기 위해선 특히 정치권의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신영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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