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 주는 행복
기다림이 주는 행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1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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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가는 길, 주말이면 활기가 돈다. 남동생이 고향을 지키고 있어 언제 가도 푸근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골짜기가 깊어 이름마저도 진꼴(진동)이라 했다. 지금은 세월이 좋아 도심에서 벗어나 있어도 자동차로 쉽게 갈 수 있는 공기 좋은 곳이다. 지난 주말 남편이 일년 전부터 친정 동네어귀에 짓고 있는 ‘작은 행복의 집’ 공사 현장에 들렀다. 두해 전 남편이 집터 귀퉁이에 정자 하나를 뚝딱 지었다. 나무기둥, 대들보 받침대 등 자재를 손수 구입하여 지은 정자다. 한 여름 아스팔트열기를 피해 그곳으로 가서 맞는 바람은 청량하다. 폐부에까지 스며든 삶의 현장에서 얻은 시름을 모조리 거둬준다.

정자를 넌지시 바라보는 곳에 터를 고르고 주춧돌에 기둥을 세웠다. 매끈한 서까래로 갈빗대처럼 서로 마주해 가지런히 엮고 기와로 지붕을 이으니 도포자락에 갓을 쓴 양반모습을 보는 듯하다. 언젠가 뜬구름 잡 듯 생각했던 것이 기다림 끝에 하나씩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기다림은 설렘이다. 설렘은 행복감을 생기게 하는 엔도르핀을 생성하게 한단다.

황토와 짚을 버무려 이긴 흙으로 켜켜이 쌓아 벽을 만들고 체로 곱게 친 흙을 장방형으로 놓은 구들위에 깔았다. 황토 빛깔이 남향으로 통유리를 설치하니 선비의 책읽는 소리가 귓전으로 쟁쟁하게 환청으로 들린다. 장작불에 온돌방이 뜨근해 질 때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부자가 된 기분이다. 기다림을 따라 오는 행복감이다.

서툰 손재주로 지은 정자의 기둥아래 수세미 씨앗을 한 봉지 뿌렸다. 새 순이 자라 여름내 사선으로 걸쳐놓은 장대를 따라 쉼 없이 하늘을 향하더니 주렁주렁 곤봉같은 수세미를 처마 끝에 매달고 있다. 하늘을 향해 노랭이 수염하나를 달고 줄기를 뻗치고 있었다. 외줄타는 곡예사의 아슬함이 숨을 멈추게 하지만 긴 막대를 들고 외줄 위에서의 춤사위에 환희심을 불러일으키듯 외줄에 달린 수세미가 그렇다. 세월의 기다림 끝에 덩실덩실 바람을 타고 춤을 추고 있다. 빨리 마무리하지 않는다며 늘상 채근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비단 이뿐일까. 사물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리라. 그 무엇이든 무릇 기다림이란 때론 지겨움과 힘겨움이 뒤따르겠지만 행복감이 넘치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으로 애써 위로한다. 우리는 너무 빨리 그리고 가까이만 바라보려 하는 습성이 있다. 조금 멀리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기다림이 주는 행복감을 되새겨본다. 너무 빨리 결과물만 바란다면 그 진면목을 놓칠 수 있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일 터이다. 그러니 작은 행복의 집짓는 일을 애당초 남편 혼자서 시작한 것이 차라리 다행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애써 위안을 삼는다.

느린 기차가 오가는 길옆 가을 풍광이 아름답다. 길게 뻗은 신작로 가로수 노란 은행잎이 유난히 맑다. 지난 수십년간 산업화의 물결에 편승해 사람들이 기름진 옥토를 버리고 도심으로 떠났다. 그랬던 것이 묵묵히 기다렸던 평화로운 들판과 아름다운 자연풍광으로 다시금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고 추운 겨울 구들 목 따뜻한 곳이 그리워진다. 기다림이 주는 행복감에 잠시 가슴 설렘이 인다. 행복은 결국 기다림이 주는 것이다. 내 마음속에 있는 행복밭을 이 작은 행복의 집으로 꾸며 나가기 위해 오늘도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쳐낸다.

<이정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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