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물맷돌
다윗의 물맷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1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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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기라성 같은 영웅이다. 또 그들 민족사에서 추앙받는 지도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그도 완전한 인간은 아니었다. 그도 때때로 실수했다. 특히 ‘밧세바’와의 범죄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었다. 신하의 아내를 범하는 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다윗만큼 열렬한 기도의 언어를 간직한 사람은 없었다. 다윗만큼 뜨거운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한 영혼도 드물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찬양으로 수놓았으며, 시편으로 하나님을 극진히 드높인 인물이다.

다윗의 시편은 수천 년의 세월을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천상의 다이아몬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편안한 시간에 안락의자에 앉아 시를 기록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심에 젖어 순수한 마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성장할수록 시와 함께 그의 노래도 점점 무르익어 성숙해져 갔으며 결국 사울 왕 앞에 불려간 자리에서 왕의 정신질환까지 치유할 정도의 ‘뮤직테라피(음악 치유법)’을 선보이기까지 했다. 다윗은 일생 동안 기쁠 때에도, 슬플 때에도, 우울할 때에도, 아플 때에도 늘 그의 시편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다윗은 왕이기 전에 천상 시인이었다.

다윗의 ‘물맷돌’ 이야기는 아직도 유명하다. 전쟁에 임박해 백성들이 골리앗의 몸집에 기가 눌려 불안해하자 그는 “내가 던지는 물맷돌에 맞을 만큼 골리앗은 크다”고 말했다. 그 후 구국의 위기에서 다윗의 물맷돌은 거구 골리앗을 단박에 쓰러뜨려 민족의 멸망을 막았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무장도 하지 않은 어린 다윗이 중무장한 전쟁터의 장수 골리앗을 단박에 박살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과 물맷돌이 혼연의 일치가 될 때까지 수많은 시간동안 훈련하고 연습하고 숙달시켰다. 그가 오랫동안 인내하고 노력한 끝에 몸과 마음이 일치됐을 때 역사는 그를 영웅시대의 주인공으로 호출했다.

다윗이 왕이어서 위대했던 것도 아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그가 무명시절에 야무지게 잘 살아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미래를 여는 문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을 꾸준히 준비했다. 그는 붓을 든 시문에 능한 선비이면서 동시에 장수의 칼을 손에 그러쥐고도 딱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을 갈고 닦아 항상 준비했고 백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용기를 보여줌으로서 하나님이 그에게 이스라엘 국가를 맡기게 했다.

그러니 그에겐 사울왕의 갑옷도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사울의 갑옷은 다윗의 체구에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 사울의 갑옷은 다윗에게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런 형식적이고 겉치레적인 것 보다 하나님이 벌써 그를 사울 왕을 대신 이스라엘 지도자로 점지해 두었기 때문에 그런 가식적인 것은 필요치 않았다. 그에게는 그의 대관식이 이미 준비돼 있었으며 그의 갑옷 뿐만 아니라 그의 왕복까지 준비돼 있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을 ‘다윗’이라는 거울에 비추어보면 거울 속 내 모습은 어떻게 보이는가. 다윗은 우리에게 ‘물맷돌’을 황금보다 소중히 여기라고 일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물맷돌을 하찮게 여기고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여긴다. 그리고 정작 ‘골리앗’이라는 문제에 직면했을 내게 이미 주어진 물맷돌이 없으면 다른 방법은 통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러니 결론은 자명하다. 자연의 섭리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한다. 방법을 찾을 때는 이미 게임에서 진 뒤다. 우리 손에는 이미 각자의 ‘물맷돌’이 쥐어져있다.

<박정관 굿뉴스울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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