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 문화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 문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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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릴 적 외할머니 무릎에 앉아 옛 이야기를 들으며 동지섣달 긴긴밤을 더욱 오싹하게 보냈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텔레비전도 없고 라디오도 귀했던 시절, 할머니의 이야기는 상상만으로도 머리에 그려지곤 했다. 글을 겨우 깨우치던 초등학교 시절까지 만 해도 할머니의 입담은 역사와의 유일한 소통창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나라가 고도성장을 거듭해 지금처럼 풍족하게 살게 된 건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멀리 보더라도 30여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시작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는 10년이었다. 그로부터 금융위기(IMF) 이전까지 10여년과 그 이후 10여년간을 우리는 가파르게 성장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지난 주말 전주 한옥마을에서 행사를 마치고 잠시 들렀던 한 커피숍에서의 경험이다. 그 곳은 애플사의 제품들과 스티브 잡스를 테마로 만들어진 인테리어가 마치 80년대 애플 매장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는 듯한 시간여행의 착각에 빠지도록 만들고 있었다. 흔히 오래된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내 나이마저 노후돼 전시품 취급을 받는 착각 속에서 말랑해진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재충전의 작은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관리하기 힘이 들고 살림살이가 불편하다고 한때 버린 한옥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창밖의 수많은 인파는 무슨 의미일까?

지난해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신드롬을 많은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994년을 배경으로 지방 사람들의 눈물겨운 상경기와 농구대잔치, 서태지와 아이들을 소재로 한 당시 스포츠와 연예계 등 사회적 이슈를 담아 화제가 됐었다. 혹 서태지가 올해 컴백하는 것도 ‘응사’의 힘일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농촌지역은 물론 외곽진 도시 근교엔 폐교가 늘어나고 있다. 텅 빈 교실들은 그 당시 학교를 다녔던 지금의 엄마 아빠들의 쉼터가 된지 오래다. 지금은 그 교실 입구에 ‘할머니 할아버지 어렸을 적에’ 라고 이름을 고쳐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풍경은 우리 뿐만 아니라 이웃나라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 중 유사한 성격의 시설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을 소개하자면 분고타카다시 ‘쇼와고망구라(일본 국가등록유형문화재)’ 라는 곳이 있다. 그 입구엔 ‘1964년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라는 글귀가 씌어져 있다. 또 구마모토에 있는 역사문화체험시설 ‘와쿠와쿠자’도 있다. 가상 영상으로 구마모토의 역사를 체험하는 구마모토의 과거와 현재를 보고, 듣고, 만져보면서 시공을 초월해 보라며 만들어 놓은 곳이다. 이를테면 간과하기 쉬운 근대역사를 좀 더 친근하게 접하게 하면서 쇠락해 가는 도시 재생에 눈을 돌리게 한 것이다.

지금은 이야기가 경제를 살찌우는 시대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물이다. 역사를 만나면서 우리는 과거의 사실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현재의 성장을 담보 할 수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카(E. H. Carr)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이런 원칙이 밑바탕에 자리하면 지역 문화도 무너지지 않는 성공의 방정식을 만들 수 있다.

울산은 창조도시라기보다 유구한 선사문화를 가진 역사도시다. 가지고 있는 ‘우리 것’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문화기획자가 필요하다. 마음을 움직여서 지역을 바꾸는 이러한 문화 인력이 울산의 힘이 되는 날은 바로 오늘이다.

<김재범 자운도예연구소 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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