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밥그릇’ 놓고 다투는 정치와 교육
‘아이들 밥그릇’ 놓고 다투는 정치와 교육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11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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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끝이 한결 매서워졌다. 마른낙엽 구르는 소리가 어렵게 사는 이들에게는 결코 낭만적 시구로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에서 들리는 소리도 그렇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내년도 예산에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하면서 정치권에서 ‘아이들 밥그릇’을 놓고 제2 라운드 다툼이 시작됐다.

아이들 점심 한 끼가 유상이냐 무상이냐가 뭐 그렇게 중대한 문제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근본적인 정치이념과 셈법이 도사리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라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 대결이며, 이에 따른 여당과 야당의 표 계산 논리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표(票)라면 양잿물도 삼킨다는 게 정치판의 생태다.

이것은 또 정치와 교육의 갈등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갈등도 깔려있는 복합적인 문제이다. 국민복지가 정치의 핵심적인 주제로 부상하는 현대정치의 추세에 따라 이슈를 선점하여 표심을 자극하려는 진보진영이 먼저 전면 무상복지를 외치기 시작하면서 전면적 논쟁거리가 되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 진보진영의 무상공세에 대하여 처음에는 ‘대책 없는 포퓰리즘’이라고 응수하던 보수진영도 점차 표심의 향배가 진보쪽으로 기우는 기미를 보이자 다투어 무상 복지 아이템을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쪽에서만 나팔을 불다가 결국 쌍 나팔을 불게 된 것이다.

무상급식 문제는 보수진영 오세훈 시장의 중간 낙마를 불렀고 안철수의 전면 등장과 진보진영 박원순을 정치권으로 불러 들여 정치권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무상급식이 막대한 예산부담을 가중시키는 터에 현 박근혜 대통령이 18대 대선공약으로 무상보육을 내걸어 결국 현 시점에서는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이 동시에 재정을 압박하고 있는 상태다. 무상급식은 지방정부예산, 무상보육은 중앙예산으로 편성된다. 현 정부로서는 3세부터 5세까지의 유아 보육지원비를 우선 편성하려 하고 무상급식 예산은 지방정부에 미루고 있으니 재정이 빠듯한 지방 정부의 반발은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더욱 복잡한 갈등구조가 전개된 것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보성향의 야권 후보가 대거 교육감에 당선돼 대다수 보수 성향인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엇박자를 내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그러나 엇박자가 나는 것은 협의와 조정으로 소통하면 해결될 수가 있다. 정작 이 문제의 근본은 다른데 있고 원초적으로 풀 수 없을 정도로 실타래처럼 얽혀있다는 사실이다.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여야 할 것 없이 눈앞의 표심에만 급급해 세금을 더 걷지 않고도 무상복지를 시행할 수 있다고 공약을 남발한 데 있다. 좀 신랄하게 말하면 여야 막론하고 대 국민 ‘사기복지공약’을 남발한 결과가 이것이다. 재원이 없음을 알았고 세금을 더 걷지 않으면 실현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면서 공약(空約)을 남발한 것이다.

이미 알고 있었기에 이것은 착오가 아니라 ‘사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착오는 취소할 수 있지만 사기는 벌 받아야 한다. 대선 당시 공약을 만들고 그 공약을 흔들어 대면서 표 달라고 읍소하던 여야의 우두머리 급 정치인들은 지금 모두 한자리씩 꿰차고 언제 그랬냐는 둥 외면하고 딴소리를 하면서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

공짜라는 말에 사기공약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표를 준 국민도 할 말은 없다. 우리 국민 조세부담률이 18% 수준인 반면 복지국가로 부러움을 사는 스웨덴의 조세부담률이 50%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공짜 좋아해서 표 주고 나니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까’며 비아냥대는 소리가 요즘 귀에 쟁쟁하다. 더불어 곧 시작될 무상복지 공방 제2 라운드가 궁금하다.

<박기태 한국정경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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