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본 정치
아이들이 본 정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0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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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치 실력을 떠나 아이들은 당차고 담대했다. 기성 정치를 보는 시각은 어른들을 무안케 할 정도로 예리했다.

지난 7일 오후 울산시의회 의사당 3층 대회의실. 사단법인 ‘의회를 사랑하는 사람들’ 울산지회가 열두 번째로 마련한 ‘의회사랑 스피치대회’는 개최장소 덕분인지 박영철 의장을 비롯한 시의원들로부터 대대적인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7개 중·고교에서 출전한 17개 팀, 23명의 학생연사들은 일찌감치 너그러움을 멀리하고 있었다.

대상(시장상)을 차지한 성신고 1학년 박찬영, 윤혜미 학생은 ‘우리가 원하는 지도자’란 제목으로 연단에 올라 또렷하게 주장을 펴 나갔다. “여러분은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을 몇 % 신뢰하고 계십니까? 2008년 여성가족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청소년의 약 92%가 현 정치지도자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비록 6년 전 자료를 인용하긴 했어도 지금 이 시점과 비교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지 싶었다. 여학생 특유의 소프라노 음색에 대회의실 내부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사회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것이 정치지도자들이 해야할 역할인데 수시로 터지는 비리와 부패를 보면 과연 제대로 된 정치지도자들이 정치를 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아이들이 열변을 토하는 시점,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각자 판단할 나름이지만, 행사장 안에 정치인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웅변 전문가인 김종래 시의원만 심사위원석을 지키고 있었을 뿐…. 이 아이들의 외침을 시의회 본회의 실황 현장에 옮겨 놓는다면 어떤 반응들을 접할 수 있을까?

두 어린 여학생은 그들이 원하는 정치지도자 상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청렴한 정치지도자’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믿을 수 있는 정치지도자’, 그리고 ‘여론을 두려워하고 귀담아들을 수 있는 정치지도자’가 그것이었다.

아이들은 일본 드라마 ‘체인지’의 대사를 마지막에 인용하며 그들의 주장을 펴나갔다. “당선 되자마자 특권 계급인양 행동하는 사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 국민의 행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 이들은 진정한 정치기기 아닙니다.” “정치지도자의 자리는 결코 왕좌가 아니다”는 말도 곁들였다.

이들 두 여학생 외에도 뼈 있는 말을 던진 학생연사들은 적지 않았다. 심사 점수에 따라 상의 크기가 다를 뿐이었다. ‘심사 점수’란 원고내용과 발표력, 태도, 청중반응 등 여러 요소가 어우러진 결과가 아니던가.

비록 상은 못 받았지만 삼일여고 2학년 장유진, 박혜림 학생은 ‘진정한 정치가, 진정한 리더’란 제목의 웅변을 통해 기성정치인들을 향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사고’를 떠올린 두 여학생은 “대통령의 지도자 자격을 묻는다는 정치적 논점의 글이 홈페이지에 오르고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 청와대는 이 글을 말없이 삭제했다”고 꼬집었던 것.

이번 의회사랑 스피치대회의 공통주제는 ‘우리가 바라는 의회’ ‘내가 생각하는 정치란?’ ‘나도 정치가가 될래요!’ ‘내가 존경하는 정치가’ 등 네 가지였다. 해마다 어슷비슷한 주제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늘 새로운 소재로 다가올 것이 아닌가.

내년 ‘제13회 의회사랑 스피치대회’에선 어떤 아이들이 어떤 주제로 어른 정치인들을 겨냥해 쓴소리를 내뱉을 것인지, 1년 뒤가 궁금해진다.

<김정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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