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난민 기록’展 탐방후기
‘시리아 난민 기록’展 탐방후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09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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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기간 중 가난한 시골 출신 소년 한 명이 미군부대에서 ‘하우스보이’로 일했다. 그는 부대에서 만난 미군 칼 파워스 상사의 관심과 후원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뒤 그는 밥존스 신학교를 졸업해 목사가 되었고, 미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그는 귀국하여 전후의 한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던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의 대형집회에서 통역을 멋지게 감당해냄으로써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세계침례교 총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그 뒤 극동방송 사장을 엮임했고 지금은 수원에 머물고 있다. 수원 중앙 침례교회 김장환 원로목사가 바로 그 사람이다.

지난해 1월 김 목사 일행은 성지순례를 하던 중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한 곳인 페트라 관광에 나섰다. 그런데 관광을 앞두고 기상상황 악화로 호텔에 발이 묶이게 되었다. 결국 관광코스가 취소돼 여행경비 2천만원을 환불받게 됐다고 한다. 이 돈을 어떻게 할 건가 의견을 모은 끝에 이왕지사 좋은 일에 쓰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마침 신현석 주 요르단 대사의 주선으로 그들은 요르단 국왕을 알현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국왕의 입을 통해 그들은 간절한 부탁을 받았다. 시리아의 내전으로 인해 고통받는 난민촌 사람들을 방문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도 일행들과 함께 난민촌을 방문하게 됐다.

현장의 비참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한 남자는 집요하게 일행을 뒤쫓으며 큰소리로 외쳐댔다. 그 시리아 사람은 “이렇게 왔다가는 게 우리에게 하등 무슨 상관이냐. 우리를 팽개치듯 버려두고 가버릴 것이면서 왜 아무 때나 찾아와서 사람 귀찮게 하고 사진이나 찍고 가는 거냐”고 항변했다. 성지순례를 갔던 우리들은 귀국후에도 그 시리아인의 외침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뭔가 대책을 찾기로 했다. ‘시리아 난민을 위한 사랑의 집 모금 캠페인’ 특집 생방송을 펼치게 된 게 그 결과다. 방송이 나간 뒤 우리 국민들의 호응은 정말 대단했다. 당초 목표액은 3억 3천만원이었다. 난민들에게 안식처로 제공될 컨테이너 숙소 100대 분량을 구입할 수 있는 돈이었다. 그것을 현지에서 약속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청취자들의 후원을 요청했는데 목표액을 초과해 무려 17억원의 후원이 쏟아졌다.

그 뿐만 아니었다. 각계각층에서 후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SK 최태원 회장은 컨테이너 숙소 1천대 분량을 지을 수 있는 40억원을 기부했다. 사회단체인 ‘굿 피플’에서도 4억원 상당의 난민구호물자를 후원했다. 정부차원에서도 지원 계획이 수립돼 현재까지 1천 700대의 컨테이너 숙소를 현지에 전달했다.

또 중동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이중덕 사진작가는 현지 난민들의 숨소리까지 재현해 낸 작품을 기증해 전시회도 열리게 됐다. 전국 순회 중인 이번 ‘시리아 난민 사진전’은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울산에서도 개최됐다. 17년 만에 발생한 ‘시리아 폭설’로 인한 발 묶임, 십시일반의 정성으로 모아진 2천만 원이라는 종자돈, 그리고 난민들과의 만남, 시리아인의 외침, 100대 분량의 임시 컨테이너숙소 제공 약속, 극동방송을 통한 특별 모금 생방송, 그리고 시리아 난민들의 참상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후원. 이 모든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은혜라 아니할 수 없다.

<이금희 굿뉴스울산 발행인·언약의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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