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몇 살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지금 몇 살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06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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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 야간당직 근무를 서면서 밤늦은 시간 경찰서 순찰을 도는데 수사과 조사계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이 늦은 밤에 누가 있을까 의아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당시 조사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직원 한분이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퇴근 안하시냐고 물었더니 정말 사람 좋은 얼굴로 송치 보낼 사건서류들을 정리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싱긋이 웃으며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강 계장, 올해 나이가 몇이고?”, “네. 저 올해 서른 넷 입니다”, “와! 내보다 나이 많네. 내는 서른인데” 그러고는 다시 서류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내가 서른일 때가 제일 멋졌거든. 그래서 내는 그 때부터 쭉 서른처럼 살아 온기라.”

사건을 다룰 때 늘 꼬장꼬장하게 처리해 일명 ‘딸깍발’이라는 별명까지 지닌 그 분은 새벽까지 퇴근하지 않고 계속 서류를 정리하는 듯 했다. 다음날이었다. 그 분이 출근을 하지 않았기에 너무 늦게 퇴근 해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날부터 장기병가를 신청했다고 했다. 놀랍게도 병명이 위암이었다. 그날 입원했고 바로 당장 수술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암수술 입원 전날까지 꼬박 날밤을 새며 서류를 정리한다고 남아있었을까? 물론 경력이 많은 최고참인 관계로 여태껏 복잡하게 얽힌 사건들을 주로 맡아왔기 때문에 병가를 이유로 다른 직원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신의 생이 어찌될지 모르는 암수술을 앞두고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마지막 새벽까지 꼿꼿하게 자기 자리를 지킬 필요까지는 없지 않는가. 왠지 그냥 숙연해져버렸다. 다행히 수술은 잘 돼 사무실로 무사히 복귀했지만 암이라는 병이 그리 만만한게 아니어선지 퇴직한지 얼마 안돼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았다. 그렇게 덧없이 가실 것을 왜 밤을 지새우기까지 했는지 참.

그 후 꽤 시간이 지나도 자주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그날 밤. 그 직원 분은 수술을 앞 둔 불안감 때문에 두렵고 외로웠을까. 아니면 자신의 ‘서른 청춘’을 불태우며 고독을 즐겼을까. 물론 그에 대한 답은 그 사람만이 알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로 인해 ‘인생의 시간’에 대해 나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나는 몇 살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하고 말이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라는 소설 ‘은교’의 명대사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역으로 말하면 ‘내 인생의 젊음이 나의 선택으로 인한 상이라면, 내 인생의 늙음 또한 나의 잘못으로 인한 벌이다’ 가 될 것이다.

그 후 다른 사람이 내 나이를 물으면 “스물아홉+@”라고 대답하곤 한다.

1999년 겨울, 내 나이 스물아홉. 그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너무도 아름답고 소중한 청춘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 직원 분처럼 나 역시 그 겁 없던 스물아홉 청춘의 마음으로 당당히 세상을 살고 싶다.

삶이란, 인생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사실 엄청나게 큰 신의 축복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그 좋은 시간 동안 정말 순수하게 많이 고민하고 또 열심히 노력하며, 아무리 가난해도 절대 굴하지 않는 그런 멋진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은 지금 몇 살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라고 묻고 싶다.

<강윤석 울주서 형사과 경감·울산 수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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