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회-10. 그 겨울의 비(4)
107회-10. 그 겨울의 비(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04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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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한기의 출정은 본인이 자원해서 나갔다는 것을 이미 전하께서 신료들에게 알리지 않았소. 직접 출정하겠다는 하한기의 그 뜻을 가상히 여겨 전하께서 출정을 하명하지 않았소이까. 전하께서 어떻게 그의 마음까지도 들여다 볼 수 있겠소?”

상수위가 말했다.

“하한기보다는 조정의 일을 상수위안 이수위가 실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잘 알고 있지 않소이까. 크고 작은 일을 놓고 늘 의견 대립이 있어온 하한기에게 일부러 투항할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상수위가 그런 음모를 꾸민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들이 이 궁성에도 어디 한 두 사람이겠소이까?”

야도지가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음모, 음모, 대체 무엇이 음모란 말이오? 백주에 본인의 뜻에 의해서 이루진 결정을 음모라니, 나라의 모든 일을 그런 식으로 음모로 몰고 간다면 음모 아닌 것이 어딨겠소? 대체로 음모를 즐기는 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음모로 보이는 법이오. 정견모주의 뜻에 따라 나라를 세운 것 조차도 음모고, 흘러가는 저 강물조차도 음모로 흘러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겠소.”

상수위의 눈에서 불이 튀었다. 상수위는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야도지 장군을 쏘아보며 쏟아대는 말이 준열했다. 상수위는 다시 대신들의 얼굴을 한 사람씩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감히 말하지만, 지금 전하의 불편한 심기가 용안에 보이지 않소. 감히 어전 앞에서 막말을 해대다니, 이게 어느 나라의 법도란 말이며, 그대들은 어느 나라의 신하란 말이오? 나라에 대한 충정이 없이 시대의 상황에 따라 그 태도가 변하고 말이 변한다면 어찌 그대들이 이 나라의 대신들이라 할 수 있겠소? 하한기가 비록 개인적으로는 왕제이기는 하나 나라의 대신이잖소. 나라의 최고 자리에 책임을 가진 자가 스스로 나라를 위해서 혼신을 바쳐야 하거늘, 그가 나라를 배신하고, 전하를 배신하고 투항한 것을 음모라고 말하다니, 머리가 비지 않았다면 어디 한번 생각해 보시오.”

“그만들 하라. 과인이 부덕하여 일어난 일이니 이제 그만들 하라.”

왕은 어두운 얼굴로 상수위의 말을 잘랐다.

“전하, 상수위의 말이 지나치지 않사옵니까? 나라의 실권을 쥐고 있는 사람으로서 패전과 하한기의 투항에 책임을 져야 마땅하거늘 오늘 어전에서 감히 호통을 치고 있지 않사옵니까? 상수위의 행동을 소신들은 묵과할 수 없사옵니다. 전하께서 이렇게 독단적인 상수위를 곁에 두고 의견을 물어 나라의 일을 행하신다면 이번과 같은 일은 또다시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지 않사옵니까. 상수위를 벌하셔야 합니다.”

야도지가 말을 받았다.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비로소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오. 남부여(백제) 부흥의 군주가 신라군에게 포위되어 포로로 잡혀서 죽임을 당하였고, 그의 머리는 신라의 군신이 국정을 논의하는 북청 계단 밑에 매장되어, 신라의 군신들이 그 위를 밟고 지나다닌다고 하지 않소.”

상수위가 말했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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