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회-10. 그 겨울의 비(3)
106회-10. 그 겨울의 비(3)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0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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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의 전쟁에 자국의 병사를 더 내어 놓고 싶은 군왕이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은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었다는 것을 그대들이 더 잘 알고 있잖은가.”

왕은 얼굴이 붉어졌다.

“신들이 신라와 화친을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사옵니까? 만일 신라와 화찬을 맺었다면 오늘과 같은 참담한 패배는 없었을 것이 아니옵니까?”

야태산성의 성주 야도지였다. 진파라 하한기 아래서 오랜 세월을 보낸 장수였다. 오랜 세월 동안 야전에서 보낸 장수라서 그런지 말이 거칠게 들렸다. 그의 말은 국왕에 대한 질책으로 들렸다.

“만약 신라와 화친을 맺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신라의 전쟁에 동원되지 않았으리라고 어떻게 단정 지을 수 있단 말인가. 들리는 바로는 신라가 관산성을 탈환하기 위해서 전국의 병력을 다 모으고 병합한 탁순국의 병사들도 동원했다고 하지 않던가?”

진수라니왕은 이어지는 신료들의 말에 현기증을 느꼈다. 그리고 몸에 힘이 빠졌다.

“신라에 동원되는 것은 그래도 보답이 있지 않사옵니까.”

“남부여는 다 이긴 전쟁에서 군왕의 실수로 졌지 않은가. 누가 이 전쟁을 처음부터 신라가 이기는 전쟁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단 말이오?”

상수위가 침묵을 깨고 말을 받았다.

“진파라 하한기의 투항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어찌 한 사람의 단순한 투항이라고 말할 수 있겠사옵니까? 진파라 하한기는 줄기차게 신라와의 친교를 주장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다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신라에 투항한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야도지 장군이 고개를 쳐들며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적국에 투항하는 것이 어찌 정상적이라 할 수 있겠소. 더구나 이 나라의 최고 대신의 자리인 하한기라는 책무를 맡고 있는 사람이 말이오.”

상수위 아사비는 감정을 누르지 못해서 숨이 거칠어졌다. 말도 고르지 못했다. 아사비는 항명하듯 말을 서슴지 않는 신료들에게서 심히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노심초사 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전하에게 신료들의 불경한 태도가 심히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이미 터진 봇물처럼 대신들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이미 대신들 사이에도 진파라 하한기의 투항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떠돌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한하기를 관산성 전투에 직접 보낸 것은 그가 투항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보낸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모르시오이까? 그 많고 많은 장수들을 두고 하필이면 신라와의 화친을 주장하는 그를 전장에 내보내어 투항케 하였는지 소인의 생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소이다.”

야도지 장군의 말이 미끈거렸다. 빈정거림이 섞인 그의 말은 듣기에 따라서는 진수라니왕에 대한 빈정거림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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