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되지 않은 우리 ‘미생’
완성되지 않은 우리 ‘미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1.02 19: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드라마 ‘미생’을 본다. 미생(未生). 사전의 뜻은 이렇다.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大馬)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있지 않음이나 그런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반대로 말하면 완전히 죽은 것과는 달리 살아날 여지를 남기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아무리 거대한 대마라도 독립된 두 집이 없으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신세가 된다.

극중 주인공 장그래(임시완)는 한때 바둑영재였다. 7살에 바둑을 만나 10살에 한국기원 연구생에 입문했지만 프로입단에서는 번번이 실패하였고 한 가지 목표를 위해 10대를 고스란히 바둑에 바친 덕에 고졸 검정고시, 외국어 전무, 특기 전무, 스펙전무, 직장생활 전무라는 ‘요즘 보기 드문 청년’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 그가 다양한 스펙에 외국어 너 댓 개쯤은 필수인 사람들만 모인 종합상사에 뚝 떨어져 벌어지는 이야기를 사회초년생의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드라마의 시작에 주인공은 이런 독백을 한다. “길이란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지 못하는 길은 길이 아니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은 단지 서성이는 것이리라. 서성이며 나아가지 못하는 그 길 위에 놓여 질 때 우리는 얼마나 커다란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겠는가. 하지만 그 역시 우리가 미생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들 일 것이다.

회사든 학교든 사회든 결국 미생들의 집합체이다. 필자에게 수업을 받는 ‘미생’들은 요즘 동판화를 배우고 있다. 동판 중에서도 ‘메조틴트’라는 기법을 하고 있는데 메조틴트에 대해 잠깐 소개하자면 이렇다.

오목판법이며 금속판을 로커라는 미세한 톱날이 달린 도구로 판위에 무수한 흠을 내어(메를 놓는다고 한다) 발생된 요철 사이에 잉크를 밀어 넣어 검게 나타날 정도로 만든 뒤 그 상태에서 스크레이퍼와 버니셔 등으로 깍고 다져 깍인 부분이 백색이 되게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마치 흰 도화지에 연필로 새까맣게 칠을 해놓고 지우개로 닦아내며 이미지를 완성해 나가는 것과 유사한 원리이다. 메조틴트는 다른 기법에 비해 메를 놓는 과정이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인내가 특히 요구된다. 하지만 특유의 매력적인 톤과 메조틴트만이 가질 수 있는 재미있는 요소가 분명히 있다.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았던 한 남학생이 묻는다. “이런 합리적이지 않은 걸 왜 하는 거예요?”

드라마 ‘미생’ 가운데 ‘버리는 돌’이란 말이 나온다. 미련 없이 버리기도 하고 사석작전(돌을 죽이면서 외벽을 구축해서 모양을 정비하는 방법)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바둑판 위에 어떤 돌도 그냥 두는 법은 없다. 놓여진 모든 돌은 의미, 의도를 갖는다. 설령 현실적으로 중요하거나 급한 곳이 아니더라도 돌의 흐름상, 전략상 호기롭게 두는 곳이 있다.

나아가지 못하는 길도 가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다. 당시에는 지금 내딛는 이 걸음이 무의미해 보일지라도 끊임없이 걷고 또 나아가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어느 길이 나의 길인지 알수 있을 것이며 미생은 완생에 가까워져 있으리라.

<이하나 화가>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