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회-9. 가자 관산성으로(8)
100회-9. 가자 관산성으로(8)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0.26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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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성왕 32년(554년) 7월 여름 장마로 황강에 물이 불었다. 초이레 새날이 밝았다. 그날도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 하였다. 궁성 앞 광장엔 관산성 전투에 파병되는 1천명의 군병이 모여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수라니 국왕이 병사들 앞에 나가 금빛 찬란한 환두대도를 뽑아들고 출정을 명령했다.

“기필코 이기고 돌아오라!”

진수라니왕의 말이 있자 병사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그리고 하한기 진파라와 좌선봉장엔 준치산성 성주인 지세순 장군, 우선봉장 청패산성의 군장 태철지도 말 위에서 칼을 뽑아 높이 쳐들고 답례했다. 그리고 길을 떠났다.

다다국의 병력은 강을 따라 서쪽으로 행군했다. 가는 길에 산세가 험악했다. 덕유산 초입에 가라의 군병들이 먼저 도착하여 진을 치고 있었다. 다라국 군병들은 가라국 병사와 합류했다. 그곳에서 삼일을 머물렀다. 그리고는 길고 가파른 협곡을 지나 덕유 준령을 넘었다.

산을 넘어 백하산 기슭에서 하루를 쉬고 다시 이틀을 더 행군하여 남부여군 진영에 합류했다. 백촌강을 통해 들어온 왜군 1천명이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았다. 왜군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가라와 다라의 연합병력 3천명은 남부여군의 총괄적인 지휘는 받되 각각 독자적인 부대로 진지를 구축했다.

진파라 하한기가 이끄는 다라 병력들은 가라와 다라 연합군의 좌선봉에 섰다. 가라국의 군을 지휘하는 장군은 가라국의 이수위 고능파였다. 고능파는 화통하고 통솔력이 뛰어난 장수였다. 진파라는 미리 지시 받은 데로 가라군 본군과 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탄현(숯고개)을 넘었다. 탄현은 오랫동안 신라 세력을 막아내는 남부여의 요충지였다. 탄현은 지세가 높고 그 이어지는 길이가 길었다.

탄현성에서 주력군이 오기를 기다리며 보름을 머물렀다. 오랜 행군에 지쳐 있는 병사들에게 힘을 보충하기에 좋은 시간이었다. 어느덧 산천에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가을이 되니 집을 그리워하는 병사들이 늘어났다.

진파라 하한기도 마음이 심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산천에 온통 붉게 물들어 가는 가을을 난생 처음 남의 나라 전쟁 길에서 보내고 있는 자신이 슬프게 느껴졌다. 더구나 신라와의 친화를 주장해 왔던 자신이 남부여 진영에 서 있다는 것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새로 왕위에 올라 고군분투하는 진수라니왕에게 생각 없이 자신이 출정하겠다고 했으나 말해놓고 보니 후회가 되는 바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이 있음에도 자신을 하한기에 임명해준 것에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출정을 자원했으나 막상 병사를 인솔하여 원정길에 나서고 보니 자신의 결정이 경솔했다는 것 같아 후회가 되었다.

관산성은 산성 안쪽의 큰 분지를 감싸 안으면서 용봉, 마성산으로 능선과 능선으로 이어졌다. 작고 큰 많은 산성들이 주변에 산재해 있었다.

신라는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인 대성산의 능선과 관산성을 연결해서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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