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회-9. 가자 관산성으로(4)
96회-9. 가자 관산성으로(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0.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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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배반한 자를 왕의 아우라고 해서 용서해 준다면 나라를 버리고도 용서받지 못할 사람이 어딨겠는가? 그 자는 왕의 동생이기 때문에 더 용서 될 수 없는 것이다.”

진수라니왕의 말은 단호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씁쓸해 보였다. 야철지를 습격한 졸마국의 동생은 또 그렇다고 치더라도, 자신이 통치하는 이 나라, 바로 자신의 코앞에서 나라를 버리고 달아난 동생을 생각하니 분하고 괘씸하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 가슴 아프고 통탄스러웠다.

“어쩌면 이것은 우륵이란 자에 의해서 파생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자를 죽여야 했다. 이뇌왕은 왜 우륵을 죽이지 않았을까? 그 자가 나라를 배신하기 전에 처단하지 않았을까?”

“신의 생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가라(대가야, 고령)는 나라를 배신할 기미가 있는 자를 방관하여, 그 자로 하여금 나라를 버리게 해서 나라의 기풍을 망쳤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풍조가 우리 다라국(합천가야)에까지 퍼져오지 않았습니까.”

“마치 나의 말을 하는 것처럼 참담하구나. 나라를 버릴 기미가 있는 나의 동생을 내버려 두었던 나의 책임을 내 어찌 통감하지 못하겠는가. 내 동생이란 자가 나라를 배신하였듯이 그 자 또한 나라를 배신한 자이다. 그 자는 가실(嘉實) 왕이 산반해국(성열현, 의령군 부림면)에서 가라국으로 불러들여 떠받쳐 주며 가야금 12곡을 만들게 하였다는 것은 연맹국의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은가.”

“그러하옵니다. 가야연맹의 열두 나라를 이름으로 해서 열두 곡으로 만들었던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옵니다.”

“그런데 그가 나라의 기운이 기울었다고 어찌 가라와 그 왕을 배신하고 서라벌로 가서 그곳의 신하가 되기를 자처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제자 니문이란 자까지 데리고 말이다. 가라국의 왕을 위해 노래를 짓던 그 손으로 신라의 왕을 위해서, 그것도 전쟁에서 돌아오는 왕을 위해서 노래를 연주할 수 있단 말인가? 배반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나의 아우란 놈도 그 나라의 왕을 위해 지금쯤 토적을 불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이것을 어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으며, 망징패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왕은 탄식했다. 그리고 그 탄식은 비분강개로 바뀌었다. 말을 하는 내내 입술이 떨리고 목소리엔 물기가 젖어 있었다. 이수위(二首位)는 황공하여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수위는 평생 동안 왕이 이다지 탄식하고 분개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왕의 노기에 찬 얼굴을 바라보는 이수위는 가슴이 떨렸다.

“전하, 분노를 삭이시옵소서. 만백성의 지존이신 전하께서 노여움에 옥체를 떠시는 모습은 차마 신으로서 볼 수 없나이다. 모두 신들의 불충 때문이오니 제발, 분노를 거두어 만백성의 시름을 덜어줄 수 있는 길을 찾아주옵소서.”

이수위의 눈에 눈물이 비쳤다. 이수위는 가슴에 치솟는 뜨거움을 느꼈다. 아, 저토록 이 나라에 충정이 넘치는 저 지존을 위해서 내가 어찌 죽음을 두려워할 수 있겠는가. 어찌 내가 이 나라를 위해서 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수위는 가슴에 치솟는 뜨거움을 누르며 고개를 숙였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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