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
‘저녁이 있는 삶’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0.1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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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전, 울산시청 본관 2층 시민홀. 새누리당의 진 영 의원(전 보건복지부장관, 서울 용산구)을 반장으로 하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 제1반이 그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존경하는 동료의원’이었던 구면의 김기현 울산시장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여서인지 분위기는 대체로 우호적으로 돌아갔다.

한데 감사가 말미에 접어들면서 김 시장을 긴장시키는 질문이 간간이 송곳처럼 튀어 나왔다. 새정치연합 노웅래 의원(서울시 마포구갑)의 뼈대 있는 물음도 그 중의 하나였다.

“‘술 취한 울산’이라고 들어보셨나? 아까 이야기도 나왔지만, 징계 공무원 10명 가운데 4명이, 지난해에는 징계공무원의 78%가 음주운전, 음주폭행 등 음주 관련 사고로 징계를 받았다. 음주로 인한 공무원의 법규위반이 심각한 상황인데 확실한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울산시가 임수경 의원(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1~2014년 사이 공무원 53명이 받은 징계처분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음주운전으로 32건이나 됐다.

김 시장이 답변에 나섰다. “공무원들 중에서 음주운전으로 징계를 받은 부분이 줄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술 취한 울산’은 아니다.” 이 대목에서 시장은 짐짓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다른 지역의 사례는 살펴보지 않았지만 많은 공무원들이 이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을 거라는 짐작은 간다. … 보고를 드린 것처럼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징계 수위를 높이도록 이미 지시를 해 놨다. 울산시의 지침은 다른 지역보다 더 강화된 형태로 나올 것이다.”

임수경 의원이 시장의 말을 받았다. “울산시에는 대리운전 제도가 없다는 것인가. 2년 전 국정감사 시정조치에도 이 부분이 문제가 됐다. 해임 등 적절한 조치가 이뤄졌는지 의문이 간다.”

울산시 공무원들의 ‘음주 징계’ 문제는 사실 노 의원보다 진선미 의원(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이 앞서 제기했다. 진 의원은 시장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울산의 반부패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는 것을 알고 계시나? 국가권익위에서 최근 3년간 울산의 반부패 경쟁력이 하락해 2013년에는 17개 시·도 중 5위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논란 과정에서 나온 말이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는 점이다. 이 의미심장한 어휘는 김 시장의 우군인 새누리당의 강기윤 의원(경남 창원시 성산구)이 먼저 꺼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밖에서 술독의 유혹에 빠질 게 아니라 곧장 귀가해서 저녁시간을 아내, 가족과 함께 보내라는 뜻이었을 게다.

한데 ‘저녁이 있는 삶’이란 말의 저작권(?)은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고문에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저서명이기도 했던 이 어휘를 6·4지방선거 때 선거구호로 들고 나왔던 그는 선거에서 패배한 직후에도 이 말을 적절하게 구사했다.

그가 남긴 다음의 말은 오랜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 “국민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어드린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송구스럽다. 이 시간부터 시민의 한 사람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다.” 누가 먼저 혹은 나중에 사용했든지 간에 울산시 공무원 전체에 오명을 덮씌우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김정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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