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 담배
‘파랑새’ 담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0.19 19: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 담뱃값 인상문제로 제법 시끌벅적하다. 남자들이 선호하는 걸 꼽으라면 술, 담배, 여자(사랑)이라고들 한다. 물론 각자의 취향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도박을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골프를 최고로 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등산이 으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범인(凡人)들이 쉽게 접할 수 있고 애착을 갖는 것 중 하나가 담배다.

필자도 軍에서 배운 담배를 50살이 넘도록 즐겨 피웠다. 목도 아프고 혈압도 올라 담배를 끊어 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세 번씩이나 실패했다. 그러다가 10여년 전에 드디어 금연에 성공해 지금은 피우질 않는다. 세 번 씩이나 실패한 금연에 성공하기까지 갖가지 수단 방법을 동원했다.

금연하려면 다음과 같은 3가지 조건을 지켜야 한다. 술과 커피를 먹지 말 것, 스트레스 받는 일을 만들지 말 것, 담배가 몹시 피우고 싶을 땐 좋아하는 간식을 먹을 것 등이다. 술을 마시면 이성이 마비되고 감성이 살아나 자제력을 상실하게 돼 담배생각이 몇 배나 심하게 나타난다. 필자는 처음 금연을 시작한 3년 동안 술을 먹지 않기 위해 그 기회를 원천봉쇄했다.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등산, 테니스 동호회를 제외한 모든 모임에서 탈퇴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선 명상을 많이 했다. 또 실내에서 사람들과의 접촉을 가급적 피하고 등산, 테니스 등 바깥 활동에 집중했다. 담배생각이 심하게 날 때 생밤이나 누룽지를 천천히 오래 씹어 먹곤 했다. 동의보감에 생밤이 근골을 튼튼히 한다는 조문이 있는 걸 보고 선택했는데 필자의 아내는 아마 그 바람에 3가마 이상의 생밤을 깠을 것이다.

그런데 ‘담배’하면 꼭 떠 올라 필자의 눈시울을 붉히는 게 하나 있다. ‘아버지의 담배’이다. 시골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농사일도 돌보시던 아버지는 세 종류의 담배를 집안에 마련해 두고 계셨다. 밭에 나가 일을 하시거나 집안에 계실 땐 풍년초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 피우셨다. 풍년초란 원자재 담배를 잘 게 썰어 지금의 라면 봉지 2개 정도의 부피로 봉지에 담아 팔던 담배다. 당시 끽연가들은 이 풍년초를 골방대 담뱃대에 꾹꾹 채위 피우거나 신문지에 둘둘 말아 피웠다. 값이 싸고 양도 많아 시골 농부들이 풍년초를 선호했다.

학교에 출근하셔선 서랍에 ‘파랑새’를 넣어 두고 피우셨다. 이 담배는 담배공장에서 나오는 담배 중 가장 값이 쌌다. 아버지는 이 담배를 한 번에 다 피우지 않고 세 번쯤 나눠 피우셨다. 하지만 읍내 교장회의에 가실 때는 양복 위 호주머니 안쪽에 ‘아리랑’ 담배를 한갑 넣어 가셨다. 체면유지용이었다고 생각한다.

쥐꼬리만한 교사 봉급으로 세 아들을 대학까지 보내자니 얼마나 살림살이가 어려웠을 것 인지 짐작하고 남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세 가지 담배를 준비해 두고 적절히 이용했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절약 정신은 담배 외에서도 나타났다. 학교에서 보시고 가져 온 신문은 반드시 세 군데 재활용해야 했다. 첫 번째는 붓글씨 연습지로 사용했다. 두 번째는 생선 등을 싸는데 이용했다. 끝으로 이용해서 젖거나 더러워진 신문지는 깨끗하게 말린 뒤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잘라 화장실에 걸어두고 사용하게 했다.

거리낌없이 화장지를 둘둘 말아 코를 풀거나 대중 목욕탕에서 물을 계속 틀어 놓고 면도를 하는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그들을 호통치실것 같은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식들 키우느라 좋아하는 ‘아리랑’ 담배 대신 파랑새와 풍년초를 숨겨 놓고 피웠던 것이 우리 아버지 세대의 검약정신이었다. 담뱃값이 오른다고 하자 전국이 들썩이는 요즘 세태와 비교하면 격세지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류관희 전 강원도민회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