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호갱님’이다
나는 ‘호갱님’이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0.12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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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이가 저더러 ‘호갱’이라고 합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라고 해 찾아봤더니 ‘어수룩해서 이용하기 좋은 손님’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3년 가까이 된 스마트 폰이 수명을 다해가는지 배터리도 빨리 닳고 가끔 먹통일 때도 있습니다. 구입당시 최신형이 아닌데다 약정기간을 3년으로 잡아 단말기대금을 지금까지 매달 2만2천원 씩 납부합니다.게다가 결합상품을 이것저것 걸어 놔 해지도 마음대로 못한 채 울며 겨자 먹기로 쓰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구형핸드폰을 당시 80만원에 구입하면서 저는 우리 아이가 말하는 ‘호갱’이 됐습니다. 제도의 허점을 모르고 대리점의 낚시질에 걸린 제 탓도 있지만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봅니다.

각 통신사가 제공하는 보조금에 따라 휴대폰 가격이 천차만별입니다. 똑같은 휴대폰을 누구는 싸게, 누구는 제 값 다주고 사서 고객들의 불만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 ‘호갱 고객’을 보호하기 위해 ‘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이 생겼다고 합니다. 짐작컨대 전국민이 호갱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아무리 법을 바꿔도 이동통신사를 장악한 대기업은 여전히 배가 부르고 소비자는 배가 고프다 못해 아픕니다. 억울하지만 고장 날 때까지 휴대폰을 쓰려고 합니다. 또 법이 바뀔지 누가 압니까.

어디 이것뿐입니까. 흔히 사먹는 과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봉지만 터질 듯이 빵빵하고 정작 내용물은 쥐꼬리만합니다. 가격이 오르면 봉지는 더 빵빵해집니다. 과자봉지를 여는 순간, 배신감을 넘어 사기를 당한 느낌마저 듭니다. ‘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따라 오더라’는 비아냥거림이 왜 나오는 지 알만 합니다. 정보에 빠른 젊은 소비자들은 인터넷으로 대용량 과자를 사 먹더군요. 우리 아이도 ‘대기업 질소과자’대신 저들끼리 ‘인간사료’라고 부르는 대형 비닐봉지 과자를 사들고 온 적이 있습니다. 곳곳에 수입할인과자점이 생기는 이유가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백화점에서도 저는 ‘호갱’이 될 뻔했습니다. 독일산 압력솥을 30%나 할인하자 제 팔랑 귀가 어김없이 작동했습니다. 그 제품은 절대로 10%이상 할인하지 않는 제품이거든요. 종업원이“워낙 잘 나가는 제품”이라며 마침 딱 하나 남았다고 했습니다. 순간 호갱 트라우마가 생겼지요. 그 종업원은 누구에게나 물건이 딱 하나 남았다며 끊임없이 호객행위를 할지도 모릅니다.

해외직구로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S사 스마트 폰도 해외직구로 사면 최신형 폰을 30만원에 산다고 하네요. 자가용이며 텔레비전 등 고가의 가전제품을 국내에서 제값 주고 사면 호갱고객이라니 기가 찹니다. 저처럼 호갱이 안 되는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요. 저같이 어수룩한 고객은 해외직구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가게가 있고 업주와 손님이 마주하며 물건을 직접 보고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소비자가 왕이 아니라 봉’인 것도 모자라 ‘호갱’이란 소리를 듣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단통법인지 언론이며, 인터넷에 여론이 들끓어도 통신사들은 꿈쩍도 안합니다. 그네들은 진짜 ‘악어 빽’이라도 두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제 잇속 차리는 장사꾼의 입장을 십분 이해해도 꼼수에 꼼수를 거듭하며 소비자를, 전 국민을 우롱하는 이런 처사는 순진한 불매운동만으론 퇴치할 수 없습니다. 거저 ‘콱’어휴,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

<박종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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