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 위함보다 즐기고 추억하게 하는것이 축제의 진수”
“보여주기 위함보다 즐기고 추억하게 하는것이 축제의 진수”
  • 정종식 기자
  • 승인 2014.10.07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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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묵 처용문화제 거리퍼레이드 예술감독
외지 전문가는 떠나면 그만, 지역 업체들과 일하며 축제 발전 이어나가야
 

“세계적인 축제엔 반드시 거리 퍼레이드가 있습니다. 거리 행진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거든요. 어릴 적에 거리 퍼레이드를 본 사람은 성인이 돼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보러 온답니다. 옛 추억에 빨려드는 거 그게 축제의 진수입니다” 그는 축제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축제가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5일 폐막된 제48회 처용 문화제는 지난 4년 동안 배제됐던 거리 퍼레이드를 부활시켰다. 대구 가톨릭대 최현묵(58·사진) 교수가 이 행사를 기획·감독했다.

어떻게 참여하게 됐느냐고 묻자 웃으면서 “끌려 왔다”고 했다. “지난 5월 처용문화제 추진위원회에서 거리 퍼레이드에 대해 브리핑을 좀 해 줄 수 있느냐는 연락이 왔어요. 그 때 자문위원 자격으로 내려와 관련 자료들을 처음 봤습니다” 최 감독은 관계자들 앞에서 거리 퍼레이드에 대한 설명은 했지만 남은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행사자체를 기획·감독할 거라곤 꿈도 꾸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7월말 느닷없이 거리 퍼레이드를 좀 맡아달라는 기별이 왔다는 것이다. “기별을 받고 울산에 오긴 했지만 막막합디다. 이런 저런 얘기를 들어보니 우선 거리 퍼레이드에 들어갈 예산이 제대로 잡혀있는 것 같지 않더군요. 그래서 얼마쯤 있느냐고 물었더니 ‘1억 쯤 있다’고 해요.”

그래서 그는 변양섭 추진위원장에게 ‘1억 5천만원만 맞춰보라’고 했단다. “눈치를 보니까 대충 살림살이를 알만 합디다. 제대로 돈 받고 일하긴 틀렸다 싶어 차비만 달라고 했습니다. 감독비 안 받고 투자 개념으로 일을 시작한 겁니다” 최 감독이 왜 ‘끌려왔다’고 말했는지 알만한 대목이다. 그는 이번 행사를 무료로 맡았다고 한다. 변 위원장에게 물었더니 감독비만 대충 2~3천만원 인데 차비조로 2~3백만원만 주기로 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최 감독은 수시로 울산과 대구를 오가며 거리 퍼레이드를 준비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 의하면 ‘골이 지끈지끈 아플 정도’였다고 한다. 적은 예산으로 그것도 최 단기간에 전혀 생뚱맞은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생각해 낸 게 퍼레이드에 스토리텔링을 가미하기로 한 것. 거리행렬을 그냥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행사에 이야기를 입히기로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신라 헌강왕이 처음 처용을 만난 곳을 중구 동헌으로 잡고 그들이 울산의 번영을 상징하는 태화강을 건너와 남구에서 헌강왕이 처용과 신라 여인을 혼인시키는 것으로 줄거리를 잡았다고 한다. 환궁(還宮)과 혼례마당을 거쳐 벽사진경, 즉 처용이 상징하듯 사악함을 물리치고 울산의 번영처럼 좋은 일만 있을 것을 기원한다는 게 그가 기획한 스토리텔링의 개략적인 줄거리다.

“이전 자료를 살펴봤더니 행사에 이런 요소들이 빠져 있어요. 뭔가 이야기를 엮어갈 소재가 없으면 사람들은 그 행사를 오래 기억하지 않습니다. 외지인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는 이번 퍼레이드를 기획하면서 다른 새로운 변화도 시도했다. 길거리 행사를 밤에 시행키로 한 것이다. 어둠이 주는 흥분과 자유로움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또 시민들의 교통 불편을 고려해 일요일 밤을 택했다. 이전 행사들과는 달리 스텝을 완전히 울산 사람들로 채우기도 했다. “내 스텝들을 데리고 올수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울산 예술인, 울산 업체들과만 일하겠다고 했습니다. 외지에서 사람을 데리고 올 경우 그들은 떠나고 나면 그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책임감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그는 외부 전문가가 무조건 좋은 건 아니라고 했다. 툭하면 외지 전문가를 불러오는 울산 문화축제 행태에 일침을 가한 셈이다. 그는 외지 전문가들의 상당수가 껍데기만 전문가 일 뿐 ‘꾼’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축제를 제대로 기획하려면 주최 측의 ‘사람 보는 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희곡(컨텐츠)이 좋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배우와 연출자가 좋아야죠” 그러면서 최 감독이 컨설팅했던 남원 춘향제를 예로 들었다. 춘향제는 예산만 20~30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지방축제다. 그럼에도 이 축제의 발전이 더딘 건 지역 문화단체들이 행사를 주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역 단체들이 행사를 주도하는 게 무슨 문제냐고 묻자 그는 ‘대답하기 매우 민감한 일’이라며 말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러면 처용 문화제는 어떠냐고 묻자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했다. “안동탈춤 페스티벌이 국제화 돼 있지만 처용 문화제가 이보다 못할 건 하나도 없습니다. 축제 배경이 통일신라 최고 번성기란 역사성을 가진데다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는 사실(史實)을 바탕으로 한 것 아닙니까. 이 정도면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손색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최 감독은 추진위원회 측이 이번 문화제에서 월드 뮤직을 다소 줄이고 거리 퍼레이드를 기획한 것은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이라고 했다. 처용 문화제의 발전방향에 대해 묻자 그는 매우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축제 내용이 자질구래해선 안 된다”고 했다. 남원 춘향제의 단점을 염두에 둔 듯한 말이었다. 또 거리 퍼레이드가 제대로 시행되려면 지금보다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습니다. 최소한 3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아무래도 짧은 기간에 기획한 거리 퍼레이드가 맘에 걸리는 듯한 말투다. 하지만 거리 퍼레이드 말미, 문화예술회관 앞 광장에서 거행된 그가 기획한 ‘휘날레 행사’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내년 행사에서는 이 부분을 보다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최 감독은 울산 문화예술계와 직간접으로 연결 돼 있다. 그의 희곡 ‘삐삐 죽다’를 지난해 울산 연극 팀들이 무대에 올렸다. 그는 남구 고래축제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적도 있다. 또 지난해 자신이 쓴 대본으로 경주에서 처용주제 ‘칸타타’를 공연하기도 했다. 최 감독은 지금까지 주로 대구·경북지방에서 활동했다.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개·폐회식을 연출했으며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공연팀장을 거쳤다.

글=정종식 기자·사진=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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