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수능시험의 획일성은 반대하지 않는가
왜 수능시험의 획일성은 반대하지 않는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7.24 20: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거의 모든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서 가족들끼리 여러 가지 여름나들이를 준비할 텐데 긴장되는 이야기로 더위를 식힐까 한다. 올해의 수능시험은 11월 13(목), 꼭 111일 남았다. 진부한 이야기로 오늘의 노력이 있어야 내일의 보람을 맛볼 수 있다는 식의 격려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바로 수능시험 제도의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

남을 시험해보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그러한 종교적(?), 인격적 문제가 아니라 반대를 위한 반대까지도 서슴지 않던 특정 단체들이 자신들의 지향점, ‘민주주의 다양성’, ‘교육의 지방자치’, ‘교육의 자율성’, ‘사회의 양극화 해소’ 등에 비추어보아 수능 시험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따지지 않는다. 즉, 울산의 특정 교육단체들이 울산은 울산 나름의 대학입학절차를 밟겠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교복의 자율화를 한창 소리칠 때, 왜 자율화해야 하느냐고 질문하면, 군대식 획일주의가 창의성을 억제한다고 항변하였다. 그동안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지금 시행되는 것이 학교별로 교복을 입히는 제도이다. 이것도 지금은 학부형들이 학교와 교복제작회사들이 무슨 거래를 하고 있지 않는가 주시하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불신(不信)의 첨단이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에서 진짜 교복의 자율화는 없다.

옛날에는 중·고등학교에 전국적으로 통일되는 교복(아주 조금씩 다른 학교도 있었지만)이 있어서, 비록 그것이 일본의 식민지 시절에 남겨진 흔적이라고 하지만, 어른들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하는 ‘학생’이라는 표시이었다. 네거리의 빨간 신호는 건너가면 안 된다는 경고신호와 같이 검정색 교복은 ‘저희들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면 우리가 보고 흉내 내니까 안됩니다!’의 경고복장이었다. 그래서 ‘학생들 앞에서 그러면 되나?’가 상식적 국민교육이었다.

대입수능시험은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의 약어(略語)이다. 풀어 설명하면, 대학에 진학하여 성공적으로 수학(修學,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는가 알아보는 시험이다. 원칙적으로 누가 감히 한 학생의 잠재된 능력을 한 번의 시험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인가?

대학의 교육을 ‘길러내기’와 ‘골라내기’에서 울산의 실정에 맞게 한다면 당연히 길러내기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길러내기는 선천적이고 결정적인 문제가 없는 한, 울산 나름의 방식으로 모든 학생을 받아들여 이러이러한 능력과 태도를 갖춘 인재를 길러내는 방식이다. 골라내기는 학생들을 경쟁시켜 자신들의 지적 능력과 그동안 쌓아온 실력만으로 선택되어 다시 경쟁하는 태도를 교육받고 사회에 나가는 방식이다. 당연히 전자는 학교가 힘이 들고, 예기치 못한 저항에 맞서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후자는 별로 힘 안 들이고 학생들의 자율적(?) 시험선수(試驗選手) 훈련에 맡기면 되는 것이다. 현행 입시제도가 골라내기이다.

울산의 대학교육을 산업도시라는 지역 특수성에 맞추어 과감하게 길러내기로 하려면 지금의 수능 시험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입학제도는 혁신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 과정에 학교와 학생 사이의 계약이 필수적이다. 학교는 희생, 봉사하는 정신을 갖춘 교육자들로 구성되어야 하고, 즉 영악스런 교수들이 없어야 하고, 학생은 학교의 교육방침에 순수하고 정직하게 따르겠다는 계약이다. 그들은 왜 이런 계약 제도와 함께 울산만의 수능시험을 제안하지 않는가?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