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회-8. 사비성에 뜬 달(5)
86회-8. 사비성에 뜬 달(5)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10.06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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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공하옵니다. 불철주야로 감시태세를 더욱 강화하여 한 치의 틈도 주지 않도록 하겠나이다.”

기문갈 성주의 말이 정전을 울리고 다시 돌아와서 대신들의 귀를 때릴 때까지 아무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전하, 신(臣)도 한 말씀 드리겠사옵니다. 말씀 드리기 황송하오나 탁순국(창원가야)의 투항 이후 항간의 소문이 너무 흉흉하오며 그 소문에 동요되어 갈피를 잡지 못하는 백성들이 많은 줄 아옵니다.”

황우산성 성주의 말은 어눌하게 들렸다. “그래. 과인도 그런 소문을 들었다만 그대가 들은 바를 기탄없이 말해 보라.”

왕이 성주 강단석 장군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말씀 드리기에 황송하오나 항간의 소문이란 것이 어느 때나 있기 마련이지만 작금의 소문은 차마 입에 담기가 어려울 정도로 흉측한 것들이옵니다. 탁순국이 신라에 투항한 후 신라에 비협조적이란 이유로 무더기로 죽임을 당했으며 그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거리마다 뒹굴고 있다는 소문이 언제부턴가 퍼졌고, 그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것은 이미 오랜 된 일입니다.”

강단석은 망설이듯 잠시 멈추었다 다시 말을 이었다.

“아라국(함안가야)에 주둔하고 있는 백제의 장수가 날마다 아라국의 왕을 총칼로 위협하여 자기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뺏아가며, 여자들이 군인들에게 잡혀가서 변을 당하는 일이 허다하다는 소문도 널리 퍼져 있사옵니다. 그러나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것은 아라국도 곧 백제에 투항하게 될 것이며 가라국도 신라에 잡아먹히게 될 거라는 소문이옵니다. 그리고 ……”

강단석이 다시 말을 멈추고 멈칫거렸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멈칫거리지 말고 실상 그대로를 말하라.”

진수라니왕이 강단석 성주를 쏘아보며 나무라듯 말했다.

“전하 -.”

“어떤 말도 괜찮으니 어서 말해보라.”

“심지어 아라나 가라(대가야, 고령)가 망하면 우리의 다라(합천 가야)도 망하게 되리라는 소문이옵니다. 이런 소문에 현혹된 사람들은 스스로 삶을 소홀히 하고 나라의 일에도 잘 응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옵니다.”

강단석 장군은 마치 자신이 죽을 죄라도 지은 듯이 머리를 바닥에 대고 들지 못했다. 진수라니는 황우산성 성주인 강단석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것처럼 아프게 느껴졌지만 애써 내심을 감추었다. 그리고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신들을 굽어보았다.

“그래, 소문이란 어느 시대나 있었다. 그런 소문이 있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라. 사람의 목숨도 하늘이 내려 주는 것이며 나라의 운명도 하늘이 내린 것이다. 어찌 우리의 대 다라가 탁순국처럼 허무하게 무너지겠는가.”

왕이 말했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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