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단상
반구대 단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9.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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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깊어지면 더러 꿈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근래 가슴에 사무쳤던 탓일까, 간밤 꿈에 그가 나타났다. 짙은 안개에 가려 모습은 희미했지만 분명 무어라고 소리치는 듯 하다 이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반구대암각화였다. 날이 새기를 기다려 반구대로 차를 몰았다. 반구대 초입까지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아침부터 설렌 마음이 여기에서 멈춰버렸다. 반구대암각화(국보 제285호)와 천전리각석(국보 제147호)을 소개하고 국내 암각화를 연구하는 울산암각화박물관이 있고 포은 정몽주 선생의 유허지와 함께 250년 전 당대 최고의 화가인 겸재 정선의 화폭에 오를 만큼 아름다운 주변 풍광 그리고 현재까지도 천전리 상류 계곡 주변에서 숱하게 발견되는 공룡발자국, 후학에 힘쓰고 있는 반구서원 등이 있는 명소의 관문이라고 보기엔 초입은 지나치게 좁고 지저분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초입을 지나 박물관과 이어지는 진입로 역시 좁고 굽어진 것은 오래 전과 다를 게 없었다.

다행히 박물관은 관람객으로 붐볐다. 겉보기와 달리 박물관 내부는 매우 짜임새가 있었다.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을 비롯한 국내외 암각화 자료와 선사시대 울산의 자연환경은 물론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각종 유물들이 전시돼 있었다.

마침 ‘알프스 몽베고 암각화’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는 해발 3천 m 가까운 ‘베고 산’ 정상 주위에 빙하가 만든 계곡 주변의 3천여개의 바위에 새겨진 약 4만점의 암각화 중 일부를 컬러 사진으로 찍은 것들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에 비해 우리의 반구대암각화가 시대적으로 크게 앞설 뿐 아니라 역사적·문화적 가치면에서도 월등하고 소중한 세계적 문화유산임을 알 수 있다.

암각화를 보기 위해 반구서원을 지나 급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눈살이 찌푸려졌다. 마치 시위처럼 버티고 서 있는 폐건물과 휴게점으로 보이는 비닐하우스, ‘한국의 100선 아름다운 하천 길’이란 대리석 표지석이 서 있는 둑 아래 댐으로 향해 있는 생활오수 파이프라인과 악취, 공룡발자국 안내 표지판 옆길에 뒹굴고 있는 쓰레기를 보는 순간 잠시 말을 잊고 말았다. 이는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대접과 도리도 아니거니와 찾는 사람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건너편에서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반구대암각화는 올 여름 잦은 강수로 거의 물에 잠겨 있었다. 저 귀중한 문화유산을 가까이서 보고 느낄 수 없다는 데 대해 은근히 화가 났다. 조망대와 암각화를 가로 지르는 대곡천 물 때문이 아니다. 길을 터주면 흘러가고, 막으면 넘치는 것이 물이다. 그런데 이 간단한 이치를 무시하고 억지 물막이 시설인 ‘카이네틱 댐’으로 암각화를 빙 둘러싸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몰상식한 발상도 한심하지만 물 문제를 이유로 이를 덥석 받아들인 당시 시정 책임자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현재 천전리각석과 반구대암각화는 선사시대 북태평양 연안의 독특한 해양어로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유적이자 인류 최초의 포경유적으로 평가돼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생각해보라. 만약 유네스코 심사위원들이 반구대에 와서 물막이 인공시설인 카이네틱댐에 둘러싸여 가려진 암각화를 보고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겠는가.

우선 사연댐 수위를 낮추어 암각화가 ‘물고문’에 시달리는 고통부터 덜어줘야 한다. 또 결국은 댐을 폭파하고 신비의 역사문화 선사대공원으로 조성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저 댐 물속에 제2, 제3의 암각화가 혹 숨어있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김종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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