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늙는 법
우아하게 늙는 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9.24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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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다닐 때 이야기다. 일요일이라 길어진 까까머리를 깎기 위해 집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이발관에 간 적이 있다. 그곳으로 간 이유는 이발비도 싸지만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편안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기다리는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한쪽 선반 구석에 오래되고 낡아빠진 구식 라디오 하나가 비치돼 있었다.

얼마 전 어떤 TV공개방송을 보고 있었는데 마침 그 방송 사회자가 ‘송해’ 아저씨였다. 재치 있고 구수한 말솜씨는 고교시절 이발소 한 쪽 구석에서 구식 라디오를 통해 듣던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최근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 중에서 우아하게 연로해가는 사람을 대표로 꼽는다면, 아마 89세로 나팔꽃 인생의 송해 MC, 낭만논객인 86세 김동길 역사학자 그리고 아직도 까랑까랑한 82세의 이만섭 전 국회의장일 것이다.

필자는 요즘도 일요일 낮 12시 10분이면 서민프로 ‘전국노래자랑’을 재미있게 시청한다. 사회자는 옛날 그때 그 아저씨 송해다. 무려 45여 년이란 긴 세월 동안 방송 일을 하고 있는 그가 언젠가 이렇게 선언한 바 있다. “나는 무대에서 서기 힘들 때까지 사회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의 장수비결은 소박하게도 다름 아닌 정기적인 단골 목욕탕 다니기, 마늘장아찌 먹기, 그리고 ‘BMW’라고 한다. BMW는 버스(Bus)나 지하철(Metro)을 이용하고 걸어 다니는 것(Walking)을 생활화한다는 의미이다.

잠깐 화제를 외국의 인물로 돌려보자. 300여개의 특허를 갖고 있는 미국 자동차 산업의 대부 찰스 케터링은, 80세가 지난 어느 생일날, 아들로부터 조용히 질문을 받는다. “아버지 이제 연구는 그만하시고 좀 쉬시지요”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오늘만 생각하는 사람은 흉하게 늙는 거야! 나는 항상 미래를 바라본다”고 했다.

항상 미래를 바라보는 꿈이 있다는 것은 곱게 늙을 수 있다는 말이다. 10여년 전 시사주간지 ‘타임’은 현역 인물로 ‘우아하게 늙어가는’ 미국인 10명을 엄선한 흥미로운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그 중 지금은 8명만 생존하고 있는데 몇 명의 면모를 잠깐 보자.

남성으로는 투자의 귀재로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불리는 올해 84세의 워렌 버핏을 들 수 있다. 그는 어릴 때 고향 오마하 도서관의 책을 모조리 읽었다는 일화도 있다. 또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과 자주 리더십을 주제로 대담하는 77세의 콜린 파월 전 미국무장관, 폴 뉴먼과 같이 명콤비를 이룬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로버트 레드퍼드는 아직도 건강한 78세다. 여성으로는 미국 최초의 연방대법원 판사였던 금발의 여성 샌드라 오코너. 그녀는 올해 85세다.

이 인물들의 공통점은 모두 ‘영원한 현역’인 데에 있다. 늙음을 감추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는 점은 진정 본받을 만한 점이다.

대체의학의 권위자 앤드루 웨일은 ‘우아하게 늙는 노하우’를 제시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건강방법과 큰 변화는 없다. 단지 최고의 건강방법은 ‘늙음을 탄식하지 말자’는 것이다. 또 ‘노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하고 그 대신 ‘지혜, 사랑, 용서, 부드러움, 여유, 아량’ 등 노년이 주는 장점을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궁극적 희망은 건강한 장수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수는 수용하되 곱고 우아하게 늙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최고의 행복일 것이다.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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