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회-7. 배신과 응징(6)
78회-7. 배신과 응징(6)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9.2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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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라국(금관 가야)이 신라에 투항한 후 남아 있는 가야 여러 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컸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 나라는 탁순국이었다.

동쪽으로는 신라와 서쪽으로 백제의 세력과 맞서게 된 탁순국은 살아남기 위해서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러한 탁순국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진수라니왕은 탁순국의 이수위가 자신을 찾아온 의도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말씀 드리기 황송하오나 탁순국은 지금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사옵니다.”

“나도 탁순국의 처지가 어렵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소이다.”

진수라니왕의 음성이 부드러웠다.

“전하도 아시겠지만 외세의 어려운 틈바구니 속에서 아시라 국왕께서는 왜사신 게누노오미를 이용해 왜국에 병력을 요청해서 웅천(창원)으로 불러 들였사옵니다.”

“그랬다는 소문을 나도 들었소.”

“그런데 그 자가 도움을 주기는커녕 두 해 동안이나 구삼모라(창원 북방의 언덕마루)에 병력을 주둔 시키고는 자기 세력을 심으려고만 하였사옵니다.”

“자기 세력을 심으려 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그자가 대신들 중에 몇 사람을 꾀어 자신의 대변자로 만드는가 하면, 일부 성주를 자기 세력으로 삼아 탁순국에 영주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고 말았사옵니다. 심지어 주둔지 주변을 약탈하는 것조차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소?”

진수라니는 구체적인 상황이 알고 싶었다.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만 왜국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서 신라와 백제에 군사적 도움을 요청하였사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도움이 되기보다는 화근이 되고 말았사옵니다.”

탁순국 이수위 파라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나라의 호전성이 만만치가 않지 않소.”

“그걸 알면서도 두 나라를 불러들인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 되고 말았사옵니다. 남부여(백제)가 아라국의 걸탁성(방어산성)을 점령하여 군을 주둔시키고 있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사옵니까. 바로 그 병사들이 웅천으로 와서 왜사신 노수구리를 포박하고 우리를 공격하였사옵니다.”

말하고 있는 탁순국 이수위의 수염이 떨렸다.

“구원군을 요청하였는데 도리어 공격을 가했다니 참으로 안됐소이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되었소?”

진수라니왕의 말에 동정이 실렸다,

“남부여군들은 우리가 쉽게 함락당하지 않자 구레모라(창원) 북방에 성을 쌓아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그리고 철군할 때 근처의 5개성을 함락시켰습니다.”

“그리고는 남부여군이 다시 오지는 않았소?”

진수라니는 엎드린 탁순국 이수위의 고개를 내려다보았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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