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회-7. 배신과 응징(5)
77회-7. 배신과 응징(5)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9.22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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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상수위와 성주에게 명을 내리고 옆에 서 있는 호위군장 명궁수 능치기말을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저놈을 한번에 죽여 버려라. 남아있는 한쪽 눈마저 꿰뚫어 버려라.”

진수라니의 말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반역자는 죽어서도 반역자가 될 것이다. 반역자의 피는 대가 바뀌어도 결코 변치 않는다.’

진수라니는 부왕이 생전에 자주하곤 했던 말이 생각났다. 부왕의 말을 뼈 속 깊이까지 새기지 않았던 자신을 책망하며 지그시 어금니를 물었다.

전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명궁수 능치기말의 화살 하나에 반역자 필모구라를 보기 좋게 꼬꾸라졌다. 필모구라가 탄 말의 동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능치기말이 그의 말이 병력의 앞쪽으로 돌아서면서 멈칫하는 순간 화살을 날렸다. 오른쪽 눈언저리에 화살을 맞은 필모구라는 바닥에 떨어졌고 놀란 말이 주인을 밟고 달아났다. 그는 그 자리에서 절명했지만 어느 하나 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황우산성의 병력이 후방을 공격해 오는 것과 동시에 성문을 열고 나가자 졸마 병사들은 제대로 한번 싸워 보이지 않고 오합지졸처럼 달아났다.

전황은 그렇게 끝났다.

자신의 누이를 구하러왔던 고자국(고성) 거루산성 성주가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물러간 뒤 옥전엔 다시 가을이 평화롭게 깊어가고 있었다. 이제 타는 듯 붉어가는 저 잎들이 지면 또 겨울이 올 것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산성마다 충분한 식량을 비축하고 땔감을 마련하여 어떤 외침이 있더라도 막아낼 수 있는 대비를 해야 했다. 상수위를 시켜 겨울의 방어 태세를 철저히 하도록 하명한 뒤 진수라니 왕은 잠시 한가롭게 멀리 궁성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옥전의 늦은 가을은 이렇게 쓸쓸하다. 벌써 몇 번째 가을이었던가. 기억할 수 없는 저 먼 시간으로부터 가을은 그렇게 있어왔다. 젊은 날에는 가을이 언제 왔다 갔는지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가을은 그냥 그렇게 왔다가 가는 가을이 아니었다.

가을은, 산천에 붉게 타는 나뭇잎들은 진수라니의 마음에 그 붉은 수심을 뚝뚝 떨어뜨리고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비애가 느껴져서 옥전의 가을 산천은 더 비경이다. 장대하면서도 그 능선의 흐름이 부드럽고 마치 둥지를 싸안고 있는 것 같은 산들과 그 앞으로 흘러가는 황강의 유유함을 진수라니는 여유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유도 잠시였다. 상수위가 탁순국(창원)의 사신을 데리고 들어옴으로서 그 여유마저도 깨어졌다.

“전하, 탁순국의 이수위 파라찬 문안드리옵니다.”

탁순국의 이수위는 매우 정중했다.

“어서 오시오. 계속되는 외세의 침입 속에 이수위의 노고가 참으로 지대하시오.”

진수라니왕은 이미 상대의 의중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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