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벽화와 ‘극락’
흙벽화와 ‘극락’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9.21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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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날 밤, 초대형 만월 슈퍼 문을 보고 딸아이가 소원을 빌었다한다. 우리 가족의 소원과 안녕을 위하여다. 그리고 다음날은 가족 모두 ‘통도사’에 가서 돌아가신 조상에 대하여 마음의 기도도 올렸다.

그곳은 필자에게는 특별히 명절이 아니더라도 가끔 들리는 사찰이다. 그날따라 그곳 경내를 무심코 살피게 되었는데 놀랄만한 광경을 발견했다. 먼저 홍살문을 거쳐 천왕문을 들어서고 경내에 들어서면, 오른쪽 기와전각 ‘극락보전’의 흙벽에 그려져 있는 고색창연한 그림이다. 그냥 스쳐버릴 뻔한 한 점의 흙벽화인 것이다.

그 흙벽화 속에서 감동스러운 내용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발견하였지만 그나마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된다. 경남 유형문화재 제194호로 지정되어 있는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 벽화다.

여기에서 잠깐 ‘극락과 지옥’의 의미를 사전에서 보자. 불교에서는 ‘극락’은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로 괴로움이 없으며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일컫는다고 한다. 또 인간세계에서 서쪽으로 10만억 불토(佛土)를 지난 곳에 있다고 흥미롭게 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극락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아마도 위의 ‘반야용선’ 벽화를 감상해보면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지옥’은 큰 죄를 짓고 죽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끝없이 벌을 받는 곳이다. 불교에서는 죄업을 짓고 매우 심한 괴로움의 세계에서 난 중생이나 그런 중생의 세계를 말한다고 한다. 이러한 지옥의 모습을 보려면, 아마도 일본의 벳부(別府)온천지역에 가면 걸맞을 것이다. ‘지옥온천순례(地獄巡り)’라고 하는데 아홉 개의 지옥모습이 실제와 같이 적나라하게 재현되고 있어 흥미진진하다.

‘반야용선도’의 크기는 가로가 260㎝ 세로가 230㎝로 ‘극락보전 ‘의 뒷면 중앙부에 그려졌는데 상당히 크다. 중앙 위쪽에 가로로 길게 용선(龍船)이 묘사되어 있고, 배 머리에는 극락으로 인도하는 깃발을 든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이 합장하면서 서 있다. 배 후미에는 중생을 지옥의 고통에서 구해주는 ‘지장보살’이, 여섯개 고리가 달린 지팡이 ‘육환장’을 들고 서 있어 든든하게 보인다.

그리고 배 중앙에는 ‘극락으로 가는’ 다양한 중생들의 모습이 보여 인상적이다. 중생의 참회를 듣고 선법을 베풀어준 ‘비구’와 ‘비구니’ 스님이 보인다.

또 그 옆에는 몸가짐이 바르고 점잖은 ‘양반’도 보인다. 그리고 세상의 학문을 죄다 탐구한 듯한 ‘선비’모습, 많은 풍상을 겪었지만 한평생 후회 없이 살아온 ‘노인’도 동승하고 있다. 그 뿐인가 무엇이 못내 미련이 많아 이 속세가 떠나기 어려운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자상한 집안의 ‘가장’도 보인다.

그리고 속세에서 못 다한 사랑을 하였는지 극락에서는 좀 더 연을 갖고 싶어하는 ‘아가씨’며, 아들 딸 자식 잘되라고 합장하는 ‘할머니’ 등, 여러 신분의 중생들이 각자의 표정을 짓고 있다.

배 아래로는 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망망대해를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를 보면 봉우리진 흰 연꽃이 구름 위로 솟아올라 있어 이미 연화장 세계에 이르렀음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반야용선도는 반야 즉, ‘지혜’를 깨달아 저 피안(彼岸)에 도달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의미심장한 한편의 걸작이다. 불가에서는 ‘선행 ‘을 많이 하면 죽어서 이 용선을 타고 영계(靈界)의 바다를 건너 ‘극락정토 ‘로 간다고 한다.

세상은 그래도 악인(惡人)보다 선인(善人)이 많다. 미래에는 악인이 없는 세상, ‘선행’을 많이 하는 사람만 사는 피안의 세계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으로 가는 속세인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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