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말을 잊은 채 계속 밖을 주시한다. 할머니를 업은 남자는 자신의 차로 다가오더니 양해를 구하는 듯 우리 차를 향해 손을 올린다. 나는 남편에게 당신이 가서 차 문을 열어주라고 했다. 남편이 그럴까 어쩔까 하는 사이 이미 남자는 허리를 구부려 차 문을 열고 조심스레 할머니를 차 안에 모셨다. 일행으로 보이던 할아버지에게 손짓을 하며 타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일행이 아닌듯 할아버지는 더 이상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 뒤차의 운전자가 경음기를 울린다. 비상등을 켠 상태였지만 좌회전 신호가 떨어지고도 한참 서 있는 우리 차를 견디지 못했으리라. 뒤차의 운전자가 우리를 스쳐 지나가면서 흘깃거렸다.
남자의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래 기다리던 좌회전 차선을 비켜서더니 우회전을 했다. 원래 가고자 했던 방향의 정반대, 아마 할머니의 집 방향이리라. 남자의 차가 떠난 자리, 우리는 좌회전 신호를 받아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는 내내 묘한 생각들이 섞여 침묵한 채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을 대하는 잣대를 여러 개 갖고 산다. 지역을 옹호하고 학연을 중히 여기고 사사로운 이익 때문에 공익에 눈을 감기도 한다. 가진 게 없고 아는 게 부족하고 결속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들이 약삭빠르고 이익을 향해 잘 뭉치고 야합하는 이들 사이에서 늘 깨질 수밖에 없는 구조. 그러니 힘 있는 자들은 그들대로 뭉치고 힘이 부족한 이들은 또 그들대로 뭉치고 나면 끄트머리에 남은 이들은 이리저리 자신을 끼어 넣어 줄 무리를 기웃거리며 세상을 살아낸다. 요즘처럼 숨 가쁘게 자신의 안위와 생존을 걱정하던 시대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세상을 살아가는 어려움은 세대를 관통한다. 나 또한 타인과 세상에 대해 비평보다는 비난을, 칭찬보다는 비아냥을, 공감보다는 트집을 잡으며 살았으니 누구를 탓하랴. 누구나 바쁘고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가운데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행동하는’ 남자의 몸짓은 남달라 보였다. 방한 내내 모두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떠올랐다면 과장일까.
행동하는 남자와 목격만 하는 나, 엄밀하게 말하면 조수석에 탔던 내가 차에서 내려 훨씬 빨리 그들에게 다가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문을 열어주라고 말하던 나와 마음을 몸으로 곧장 실천하는 남자와의 차이가 계속 나를 옥죈다. 남자의 행동에 감격해서 울컥했던 감정은 오롯이 자괴감으로 변해 한동안 나를 한숨짓게 했다.
“그래, 저런 사람들이 있어 세상이 움직이는 거지!”
남편의 일갈이 내내 떠오르는 걸 보니 나도 행동하는 자가 될 날이 머지않았으리라 믿는다.
<박기눙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