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버팀목
마음의 버팀목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9.17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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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눈이 많이 내리면 즐거움도 컸지만 걱정도 만만치 않았다.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들녘을 삽살개와 함께 딩굴며 눈싸움을 했고 솔가지를 엮어 만든 눈썰매를 타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눈 치우는 게 여간 큰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무릎까지 쌓이는 건 기본이고 많을 때는 쌓인 눈이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에 닿을 때도 있었다. 위로 두 형님이 계셨지만 외지로 유학을 나가셔서 눈 치우기는 필자의 몫이었다. 그런데 그 범위가 상당했다. 안마당, 바깥마당은 물론이고 신작로로 이어지는 샛길까지 쓸어내야 했다.

어릴 적 필자가 살던 강원도 산골 마을 집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강가 바위언덕 위에 청원각(淸遠閣)이란 효자각이 하나 있었다. 집 마당에서부터 효자각에 이르는 길과 효자각 주위의 눈을 모두 깨끗이 치우는 것도 어린 필자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마당의 흰 눈은 대충 쓸어도 아무 말씀 안 하시는 할머니께서 유독 청원각의 눈은 조금이라도 깨끗이 쓸어내지 않은 것이 들통 나면 크게 꾸지람을 하시곤 했다. “이놈아, 너희 아버지는 단지(斷指)까지 해 가며 이 할미를 살렸고 그래서 효자각이 세워졌는데 너는 어찌 돼 먹은 놈이 효자각 눈 하나 제대로 쓸지 못하느냐. 그래가지고서야 어디 효자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냉큼 가서 마저 쓸지 못하겠느냐. 이놈” 필자는 할머니의 추상같은 불호령에 한 마디 변명도 못한 채 꽁꽁 언 손을 비비며 댓 싸리 빗자루를 어깨에 메는 둥 마는 둥 둘러메고 청원각으로 내 달리곤 했었다. 그 당시에는 할머님이 몹시 원망스러웠는데 세월이 흐른 지금은 쩡쩡거리던 그 분의 불호령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 일까.

인간은 가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그 자존심을 다시 날카롭게 세울 수 있는 그 뭔가가 있어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존재를 하나 쯤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필자에게는 청운각이 바로 그런 존재다. 필자는 대학입시에서 낙방해 재수를 했을 때와 군 복무 3년을 마치고 돌아와 복학한 뒤 약사고시에 도전했을 때가 일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그럴 때 마다 필자를 지탱시켜주고 잡아준 버팀목이 바로 청운각이었다. “청운각! 아, 그래 네가 누구냐. 효자의 아들이잖아. 아버님 얼굴에, 고향 명예에 먹칠 할 순 없잖아. 안 돼. 암, 안 되지. 안 되고말고. 나는 효자의 아들이야” 살면서 어려울 적마다 필자는 이런 소리를 속으로 되 내이곤 했다.

그래서 청운각 덕분에 필자가 살던 시골마을에선 처음으로 세칭 명문대 약대에 합격할 수 있었다. 또 약사고시도 무난히 돌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즘 젊은이들에겐 이런 ‘마음의 징표’가 부족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장애물에도 좌절하고 꿈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는 청운각을 징표로 삼았지만 누구든지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징표 하나 쯤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삶이라든지 자신에게 깊은 교훈을 남겨준 사건 같은 것도 얼마든지 그 뭔가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것을 찾아 삶의 버팀목으로 삼으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추석 필자는 앞동산에 휘영청 떠 있는 보름달을 보며 강원도 산골 고향에 있는 청원각을 떠 올렸다. 그리고 청원각 기와마루에도 한가위 보름달이 걸려 있으리라 생각하며 젊은 날들을 회상해 보았다. 할머니의 불호령을 그리워하며.

<류관희 전 강원도민회장·유영당 약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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