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회-6. 아버지, 그 아버지의 나라(7)
69회-6. 아버지, 그 아버지의 나라(7)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9.10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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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아시겠지요. 전하는 이 꽃을 갖지 마세요.”

어머니는 혼자서 말했다. 그러다 내 손에서 억새꽃을 빼앗았다.

“어머니, 그렇게 말하면 무서워요. 저는 전하가 아니에요.”

어린 진수라니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옵니다. 전하. 전하이옵니다.”

어머니는 울고 있었다.

“어미를 죽이시면 아니 되옵니다. 전하.”

“어머니 무서워요.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어린 진수라니도 울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어머니의 표정이 바뀌었다. 울던 얼굴이 험상궂어졌다. 그리고는 눈을 부릅떴다.

“이놈! 감히 에미를 죽이려하다니!”

어머니의 얼굴이 어느새 비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진수라니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다 잠을 깼다. 잠이 째고 나서도 한참 동안 몸이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비록 꿈이었지만 43년 만에 다시 보는 얼굴이었다. 43년 전 무태산성 석굴에 유폐되었다가 졸마국으로 추방되고 나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 외로웠던 어린 시절에도 결코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던 어머니가 꿈속에 나타나다니? 알 수 없는 일이야. 이 무슨 변고란 말인가. 혹시 돌아가시기라도 한 것은 아닐까? 아직은 살아 계시겠지. 부왕 전하보다 일곱 살이나 손 아래였으니 아직은 살아 계시고도 남을 나이이지 않은가. 하늘에서 큰 별이 지고 부왕께서 돌아가셨는데, 분명 이는 어머니에게 무슨 변고가 있다는 현몽일지 모른다. 그때 어머니가 데려갔던 어린 동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들리는 말로는 졸마국에 그의 외할아버지가 성주였던 그곳에 가서 그 성의 성주가 되었다고 하는데…….’

진수라니는 생각을 떨치려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생각이 멀어지지 않았다. 새벽이 되어 가는 데도 부엉이는 아직도 밤의 흉물처럼 울어대고 있었다.

‘부왕이 승하하셨다는 것을 알았을 턴데, 동생이 오지 않았던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을까? 폐위되어 쫓겨난 그 나라에 비록 부왕의 죽음이라 하더라도 차마 아들을 보낼 수 없었던 것일까?’

진수라니는 어둠 속을 멍하니 응시했다. 어머니, 아니 한때 다라국의 왕비였던 어머니의 얼굴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폐위되어 쫓겨날 때 꽃 같았던 그 얼굴에 꿈속에서 흉악하게 일그러지던 늙은 얼굴이 겹쳐졌다.

“내가 너의 어미를 폐위한 것은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네 어미의 죄가 커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어미가 그리워 울고 있는 너를 지켜보는 나의 마음이 네 어미를 쫓아 보내야 했던 그 마음보다 몇 십 배 더 쓰리고 아팠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비가 유폐되었던 바로 그 석굴에 장차 이 나라에 국모가 될 며느리가 유폐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그날, 부왕은 그렇게 말했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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