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의 목적, 그리고 다양성
원래의 목적, 그리고 다양성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9.0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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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잠수함인 U보트는 영국 본토로 왕래하는 수송선단을 몹시 괴롭혀 작전지원에 많은 지장을 주었다. 이에 영국 해안경비사령부는 폭뢰를 이용해 대응하고자 했다. 폭뢰는 해수면에서 투하되어 적당한 깊이에서 폭발함으로써 적의 잠수함을 타격하도록 고안돼 있다. 너무 얕은 곳에서 폭발하면 그 에너지의 일부분이 수면 위로 흩어져 효과가 줄어든다. 반대로 너무 깊은 곳에서 폭발하면 강한 수압으로 인해 역시 효과가 줄어든다.

영국 해군은 면밀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폭발력을 가장 크게 하는 수심을 계산하여 실전에 적용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전은 실패하였다. 이에 대한 원인분석을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OR(Operations Research, 작전연구) 팀에서 수행하였다. OR 팀은 이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살펴본 결과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 것을 발견하였다. 즉 폭뢰의 가장 큰 목적은 적의 잠수함에 타격을 주는 것인데, 기존의 연구는 폭발력에만 치중했다는 것이다. 이에 작전상의 자료를 수집하여 U보트가 있을 만한 수심을 확률적으로 예측하고 거기에 맞추어 폭발 수심을 조정하였다. 그 결과 단 시일 내에 상당한 전과를 거둘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어떤 목적을 위하여 일을 하는데 그 과정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원래의 목적을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부분적인 해결책만 찾는 와중에서 전체적인 시야를 놓치기도 한다.

이제 각급 학교는 개학으로 활발한 기운이 넘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학기에 대한 기대감은 봄학기만큼 크지 않은 것 같다. 금년도 벌써 하반기를 향해 치닫고 있는데 이루어 놓은 게 무엇인가 하는 아쉬움이 마음 한편에 자리잡고 있다. 지난 봄학기 초에 품었던 큰 뜻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쁜 일상에 파묻히며 점점 희미해지고 급기야는 잊어버리고 만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그때의 큰 뜻을 되새겨 볼 일이다. 무엇이 크고 무엇이 작은지를 분간하여 큰 목적을 향하여 자세를 다시 가다듬는 시간을 가지는 건 어떨까 싶다.

폭뢰 문제의 해결과정은 또 다른 교훈을 준다. OR 팀의 구성원을 보면 대부분 민간인이다. 즉 팀장은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이고 팀원들은 심리학자, 수리물리학자, 천체물리학자, 일반물리학자, 수학자, 측량가로 구성되어 있다. 이외에 조사관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한 사람의 장교가 추가됐을 뿐이다. 즉 다양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는 민간전문가들이 팀을 이루어 전쟁에 관련된 각종 문제를 해결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군인의 시각을 뛰어 넘어 다른 각도에서 더 좋은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만약 폭뢰 전문가 또는 군인들로만 구성되었다면 폭발수심 문제를 해결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도 폭발수심을 조정하자는 OR 팀의 제안은 처음에는 군 당국과 내각이 여러 가지 이유로 반대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양성의 힘을 볼 수 있다. 어떤 조직이나 집단이 자기네가 그 분야의 오래된 종사자이기 때문에 자기네가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되면 오히려 해결방법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 분야의 시각에서만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시야를 넓혀 여러 가지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본다면 훨씬 더 많은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건 명약관화한 것이다. 요즘 곳곳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에 이러한 다양성의 원리를 이해하고 적극 활용한다면 비용과 갈등을 줄이면서 원만한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고재문 울산대 산업경영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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