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위언 만물육언(天地位焉 萬物育焉)
천지위언 만물육언(天地位焉 萬物育焉)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2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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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천지가 제 자리에 있어야 만물이 길러진다’ 는 뜻으로 중용(中庸) 1장에 전하는 말이다.

공자께서 제(齊)나라 경공(景公)을 찾았을 때 경공이 “어떻게 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지”를 물었다. 공자께서 답하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어버이는 어버이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 父父子子)” 고 일러 주었다. 순자(荀子)도 그의 왕제편(王制篇)에서 군신(君臣), 부자(父子), 형제(兄弟)는 물론 농부는 농부다워야 하고, 선비는 선비다워야 하며, 공인은 공인다워야 하고, 상인은 상인다워야 하는 것이 예(禮)라고 했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신라 경덕왕(景德王)때 고승 충담사(忠談師)가 왕으로부터 백성을 편하게 할 수 있는 노래를 지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안민가(安民歌)를 지워 올렸는데 그 마지막 구절에 “군(君)은 군(君)답게, 신(臣)은 신(臣)답게, 민(民)은 민(民)답게 하면 나라가 태평 해진다”라고 기술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정치인은 정치인답고 상인은 상인답고 종교인은 종교인답고 근로자는 근로자다운 즉 ‘-다운’사람들이 함께 했을 때 비로소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잡게 되고, 정의가 바로선 살맛나는 세상이 열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국방 등 어느 것 하나 제자리에 서있는게 없다. 특히 정치의 경우, 나라의 근간이 될 중요한 법을 만지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의원답지 못하다.

세월호 참사 뒤 여야 의원들이 특별법 제정에 발목이 묶여 몇 달을 우왕좌왕 하다 이제는 국회를 벗어나 단식농성과 더불어 길바닥에서 구호를 외치는 중이다. 참으로 개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시점에서 필요한 법이 있고 그것이 시급하게 제정되어야 한다면 죽이든 살리든 국회 안에서 결단을 내야하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고 국민에 대한 도리다. 그런데 그 책무를 팽개친 채 거리로 몰려나와 목성을 높이고 있으니 참으로 꼴사납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프랑스 소설가 카뮈가 쓴 작품 ‘전락(轉落)’은 1957년 우리말로 번역돼 국내에 소개 되면서 신성한 충격을 던져 줬다. 주인공인 젊은 변호사 크레망은 자신이 알고 있는 법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을 자신의 포부로 삼고 언제나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약자 편에서 돕는데 앞장섰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을 하면서 세느 강변을 지나다 우연히 한 여인이 강물에 투신하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그냥 지나쳐 버린 채 집으로 돌아 왔다.

그는 그 일을 두고 고민에 빠지게 된다. 평소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앞장서 온 자신이 한 여인의 죽음 앞에서는 무엇 때문에 그냥 지나쳐야 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여인이 투신할 당시 자신이외 누구도 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여태까지 행해 왔던 선행과 지금까지 목표로 삼아 왔던 포부마저도 위선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는 ‘가면을 쓴 위선보다 제대로 된 악인이 더 났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팽개치고 파리에서 암스텔담으로 이사해 암흑가의 갱단 법률고문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교묘하게 법망을 피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게 된다.

평소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던 국회의원들이 국회를 떠나 자식을 잃고 참혹한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유족들 근처에서 목성을 높이고 있다. 그 모습은 국민들의 눈에 ‘크레망의 양심적 고백’과는 너무 거리가 먼 위선과 가식에 중독된 오염원으로 보여 질수도 있다.

<노동휘 성균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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