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회-5. 부왕의 죽음(14)
62회-5. 부왕의 죽음(1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27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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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만에 왕의 관이 석곽 안으로 옮겨졌다. 모든 사람들이 땅에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했다. 작은 석실 하나 하나에 부장품들이 가득 채워지자 상수위가 작은 석실을 둘러보며 물건을 확인했다.

그리고 진수라니 태자가 다섯 왕자와 함께 석실을 둘러보고 다시 석실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엎드리자 성토작업이 시작되었다.

일천여 명의 작업자들이 흙을 날러 와서 봉분을 만들었다. 밤이 되자 횃불을 밝히고 성토를 계속했다.

성토 작업은 삼일 낮밤을 세우고 성토 작업이 마무리 될 무렵 비가 내렸다. 세상을 하직하는 부왕의 이별의 눈물인지, 정견모주가 내리는 슬픈 눈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비가 내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는 더 거칠어졌다.

빗속에 봉문작업이 마무리 되었다. 진수라니는 제수가 차려진 봉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물에 젖은 황토가 진수라니의 몸을 적셨다. 그 뒤에 다섯 왕자와 상수위, 이수위, 대신들과 성주들이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았다.

대신들의 옷도 온통 황톳물에 젖었다. 일어서서 세 번 절하고 진수라니는 시관이 들고 온 제문을 두 손으로 받들고 숨을 죽였다. 땅에 꽂히는 빗줄기 소리만 들릴 뿐 만물은 숨을 죽였다. 이윽고 진수라니는 독축을 시작했다. 그의 음성이 엄숙하였다.

- 이 나라 일월성신의 주인이시고 만백성의 군주이신 부왕마마의 유택을 마련하고 소인 고자(孤子) 부왕마마의 유택 앞에 엎드렸나이다. 부왕마마의 이승에서의 위업과 치덕이 도성에 넘쳐나고 백성들의 통곡이 거치지 않는 이 슬픔을 어찌 하여야 하옵니까? 위로는 하늘이 수로대왕을 보내시어 가락대국을 여시고 아래로는 정견모주의 가야산신께서 다라국의 건업을 도우셔서, 부강한 나라를 만드셨던 선왕들의 치적이 부왕마마의 위업으로 마무리 되어 태평성대를 누려왔나이다.

이 나라의 태평성대와 부국강병의 혜택을 만백성에게 누리게 하시고 이승을 떠나시니 보이는 산천은 온통 눈물이옵니다. 이 땅에 부국화평을 여시었던 부왕마마의 그 지고한 뜻이 내세에서도 이어지셔서 만세월의 태평성대와 화락을 누리시소서. 그리고 이 땅에서 이룬 부왕마마의 그 뜻이 지하에서도 만백세 동안 이어지옵소서.

오늘 불민한 고자가 이 선산 유택에 부왕의 유택을 마련하고 부왕께서 편히 쓰시던 어품들을 마련했사옵니다.

유택의 크고 작은 석실마다 부왕께서 만드시고 융성하게 하신 그 물건들로 내세의 삶에서도 융성하게 하시옵소서. 오늘 부왕의 유택 앞에서 슬퍼하며 목매는 만백성을 생각하시어 이 나라의 창성함을 지켜 주소서…….

빗줄기 속에서도 조그만 흐트러짐도 없는 진수라니의 음성이 가늘게 떨렸다.

독축이 끝나고 다시 일어서서 세 번 절하자 왕자들과 대신들도 모두 일어나서 세 번 절하는 것으로 장례의 절차는 모두 끝났다.

“모두가 하산하라!”

진수라니의 명이 떨어지자 대신들과 성주, 군장들, 장인과 인부들이 비를 맞으며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행렬이 멀리 황강변에까지 이어졌다. 이제 밤 세워 봉분을 지킬 호위 무사들만 남겨둔 채 모두가 산을 내려갔다. 그 행렬의 마지막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진수라니는 봉분 앞에 서 있었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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