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호명하다
추억을 호명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2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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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척이 천리라 했던가. 생활권이 다르다는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늘 멀게만 느껴졌던 중구의 구도심에 발을 들여 놓았다. 버스를 타고 태화교를 건너면서 눈에 들어오는 우뚝 솟은 주상복합아파트가 조금은 낯설었다. 나는 어느 낯선 별에 떨어진 듯 잠시 동안 시계탑 사거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나 이내 도심속살의 변화가 느껴졌다. 정겨웠던 사거리 골목골목의 풍경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케이드 아래 잘 정돈된 가게들은 활기를 띠고 있었고 사람들은 넘치는 문화를 모두 다 흡수라도 할 듯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80년대 초중반부터 거의 10여년을 하루가 멀다 하고 다녔던 거리는 이제 대로가 되어 있었다. 사거리를 중심으로 ‘문화의 거리’라고 명칭한 북쪽으로 난 도로는 원래 도서관과 초등학교로 가는 길목이었는데 지금은 카페와 갤러리 전통문화 연구소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해 있었다. 8월의 오후 햇살아래 사통팔달 강줄기처럼 연결된 도심의 골목골목을 나는 천천히 걸었다. 문화의 거리, 젊음의 거리, 보세거리 등등 골목마다의 특성에 맞게 도시는 아기자기 변해 있었다.

여기던가! 지하 깊숙이 들어앉은 다방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책도 보고 음악도 들었던 곳이. 저기였지! 직장에 같이 근무하던 동료가 어느 날 갑자기 수녀원으로 간다며 마지막 인사를 서로 나눴던 찻집이. 지금은 밤하늘의 별이 된 친구와 자주 고전음악을 들으러가던 시장골목의 음악다방은 이젠 사라지고 없었다. 사거리 은행 뒤 담벼락에 수제구두 몇 켤 레를 걸어두고 팔던 곱슬머리 총각은 초등학교동창의 남편이 되었다지. 전 재산을 희사하여 무료양로원을 지었던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한 할머니의 건물도 눈에 띄었다. 그 건물의 2층에는 그 시절 유명한 다방이 있었고 얼굴이 곱고 작은 체구에 한 많던 일생의 할머니도 이젠 돌아가셨다지.

극장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서점에서 책을 고르며 아껴 두었던 돈으로 경양식집 함박스테이크를 어설프게 썰었던 아릿한 기억이 나를 희미한 추억에 젖게 한다. 어느 날 서점에서 똑같은 책을 집다가 첫사랑을 만났고 평소 조금 알던 사람과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스친 인연으로 결혼까지 하게 됐던 이 거리.

가끔씩 도화지에 마음대로 그어버린 선처럼 어딘가를 가로질러 닦은 도로와 도심 속 낯선 골목길이 나를 당황하게도 하지만 최소한 내 고유한 기억 속 도심의 모습을 먼 훗날까지 기대하는 건 나만의 욕심일까.

구도심은 90년대 초반으로 들어서면서 신도심의 상권에 밀려 한때 쇠락했지만 이젠 다시 부활해 친근하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고 있었다. 서민들의 시각적 욕구만 한껏 충족시켜주는 신도심의 다소 허황된 공간과 달리 구도심은 부담스럽지 않게 마음의 힐링까지 자처하는 듯 했다.

한일은행, 전광사, 패티의상실, 동아서점, 미도경양식, 흥농종묘사, 서울깍두기, 성지약국, 청자다방, 대원고전음악다방, 순금당….

지금은 모두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잊혀진지 오래지만, 나는 도심의 문화거리가 내려다보이는 한 카페에서 기억의 저편에 있던 추억 하나하나를 호명해 보았다. 그 때 창밖 길 건너편에서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회색보도 위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지나고 있었다.

<이정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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