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회-5. 부왕의 죽음(11)
59회-5. 부왕의 죽음(11)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2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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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침략을 물리치고 철의 생산을 늘린 3대왕은 더 낮은 능선 위에 자리를 잡았다.

선왕들의 무덤이 여기저기 도열해 있는 아래에 진패주왕이 누울 터를 잡았다. 산 아래로 황금의 강인 황강이 흐르고 멀리 궁성의 한 자락도 보이는 곳이었다. 진수라니는 부왕이 누워서도 궁성을 굽어보며 사직을 보살펴 줄 위치에 터를 잡았다.

사방으로 널찍하게 터를 잡고 그 중앙에 돌로 석곽을 만들었다. 그 석곽의 가운데는 벽을 쌓아 망자가 누울 석실을 만들고, 부장품을 넣을 석실은 별도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둘레에 20기의 소형 석실을 만들어 그 석실 하나하나에도 호석을 두르고 그 위에 하나의 봉분을 덮도록 만들었다.

돌은 깊은 산 속에서 채석하여 자르고 가공하여 이곳으로 운반해 와야 했다. 그 석실 하나엔 모두 물품으로 채웠다. 왕이 애지중지 쓰던 물건도 넣었지만 새로 만들어 넣는 것이 더 많았다. 야철지에선 모든 교역을 중단하고 부장할 물품을 만들기 위해서 나라의 모든 장인들이 동원되었다. 돌을 운반하는 데만 해도 엄청난 인원이 동원되었다.

부왕의 선왕인 조부왕의 장례는 이보다 훨씬 더 성대하게 치러졌다. 조부왕의 장지는 부왕의 뜻에 따라서 구슬밭이 아니었다. 어느 나라 국왕의 장례보다 더 큰 규모로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부왕의 뜻에 따라서 유태산 기슭에 유택을 정하고 성대한 장례를 치렀다.

중앙에 망자가 누울 대형 석실을 만들고 그 둘레에 순장자들이 들어갈 소형 석실을 만들었다. 주로 생전에 왕을 모시던 사람들을 죽게 하여 왕과 함께 매장하였다. 중앙 석실의 발치에는 왕 가까이서 시중을 들던 사람을 묻었고 친밀도가 가장 낮은 사람을 망자와 가장 먼 거리에 두었다.

현세에서 왕이 누리고 백성을 호령하면서 나라를 다스렸던 그대로 내세에서도 누릴 수 있도록 현세의 직책을 맡은 사람과 같은 수의 사람을 주변에 묻었다. 현세의 사람들이 그대로 묻히는 경우가 많았지만 간혹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묻히는 경우도 있었다.

20여개의 석실 순장 곽을 만들고 그 석실 하나하나에 순장자들과 그들이 왕을 모시는데 필요한 물건을 함께 묻었다.

순장자를 위한 석실 하나에는 보통 세 명씩을 함께 묻었고 필요에 따라서 네 명이나 다섯 명까지 묻기도 했다. 그 직책에 따라서 사람이 많이 필요했던 것에는 더 많은 사람을 배치하였다.

먼저 그들이 왕을 모시기 위해서 필요한 물건을 챙겨 넣고 물건 챙기기가 끝나면 돌 뚜껑을 덮고 그 위에 흙을 덮었다.

“국주 전하를 따라가서 내세에서도 편안히 모시겠나이다.”

순장자들은 다들 그렇게 주문을 외면 순순히 죽음을 맞았다. 그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평생 동안 왕을 모시면서 왕이 죽으면 같이 죽어서 왕을 모셔야 한다는 생각을 종교처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석곽 위로 돌 뚜껑이 덮이고 그 위에 다시 흙이 덮일 때도 단 한 마디의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들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죽음을 맞았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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