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회-5. 부왕의 죽음(10)
58회-5. 부왕의 죽음(10)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2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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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넘어서는 죽음이 어디 있으며 죽음을 넘어서는 삶은 또 어디 있겠는가, 죽음의 그 절대적 독존도 결국 삶을 초월하지는 못할 것이다…….’

진수라니 한기는 숨을 거둔 부왕 옆에서 백일째 밤을 맞았다. 이제 날이 밝으면 옥전의 선영에 부왕을 보셔야 한다. 석 달 열흘은 길다면 긴 시간이 아니었다. 그러니 진수라니에게는 오히려 부족한 시간이었다. 유택을 준비하고 거기에 부장할 물건들을 새로 만들고 하는 데는 석 달 열흘도 결코 긴 기간은 아니었다.

‘부왕을 보내드리기 위해서는 이승에서의 석 달 열흘이 부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부왕을 유택으로 모셔야 한다. 인간의 죽음은 언제나 고요하다. 절대의 정적 속에서 죽음은 살아서 다시 세상 밖으로 떠나가는 것일까?

떠나감으로써 산자와 결별하는 죽음의 생리. 죽음은 그렇게 산자를 배척하는 모양이다. 산자의 통곡도 목멤도 외면한다. 그렇게 사랑하고 소중해 하던 것을 내팽개치는 이율배반에 산자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겠지. 죽음은 이렇게 세상의 끝에 있고 우리의 삶으로써 일으킬 수 없어서 안타까운 인간의 힘 밖에 있는 것이다. 한 나라의 죽음도 저와 같을까? 살아 있는 모든 힘으로 발버둥 쳐도 결코 가닿을 수 없어서 인간을 두렵게 하는 것일까?’

진수라니는 부왕과의 마지막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장례행렬은 궁성을 떠났다. 30기의 백마를 앞세운 호위대가 가장 앞서서 길을 열었다. 그 뒤에 무장한 40여명의 병사들이 두 줄로 나누어 서고 다음에 오색 천으로 만든 칠십 여덟 개의 만장을 든 병사들이 뒤를 따랐다.

칠십 여덟 개의 만장은 부왕의 향년 칠십팔 세를 나타나는 칠십 여덟 개의 천으로 만들어졌다. 백마를 타고 호위하는 상수위 뒤에 4명의 대신들이 망자의 영혼을 모신 작은 가마를 받쳐 들고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뒤에 망자의 시신이 든 관을 운구하는 50여명의 문무대신들이 섰다.

그 뒤에 석실에 묻을 물품을 운반하는 사람들이 서고, 그 뒤에 태자인 한기 진수라니가, 그 뒤에 다섯 왕자가 각각 백마를 탄 채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뒤에 상수위와 이수위, 그리고 궁성에 각 업무를 담당하는 대신들이 서고, 그 다음엔 15개 성의 성주와 각 군영의 지휘군장들이 무장한 채 말을 타고 따랐다.

성 밖에서부터 선왕의 유택이 있는 구슬밭(玉田)까지는 각 고을에서 몰려와 통곡하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이들의 통곡소리는 길게 길을 따라 옥전의 산 아래까지 이어졌다.

구슬밭의 마지막 길은 비탈지다. 초목도 나라의 일을 아는지, 비탈을 덮고 있는 억새풀들이 솜털 같은 꽃을 날리고 있었다. 시조왕이 이곳에 와서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유택을 정해 누운 곳이 바로 이곳 구슬밭이다.

그 왕비가 누우시고, 시조왕의 왕자로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나라의 기반을 더 튼튼히 하고 율령을 제정한 제2대 왕이 그 옆에 누웠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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