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선약수(上善若水)
상선약수(上善若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20 2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필자가 처음으로 결혼식 주례를 맡아 주례사를 해본 건 약 30년 전이다. 재울 강원도민 회장직을 맡고 있을 당시 향우 한 분이 이번 주말에 아들이 결혼을 하는데 주례를 못 구해 애를 태우고 있다며 주례를 좀 서 달라고 부탁해 왔다.

나이도 젊은데다 한번도 주례를 서 본 경험이 없어 극구 사양했으나 결혼 전날까지도 못 구했다고 해 하는 수 없이 주례를 허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막상 주례를 하자니 어떤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필자보다 몇 살 아래인 신랑신부 앞에 서니 더더욱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며 간신히 주례사를 마쳤다. 며칠 뒤 신혼여행을 잘 다녀왔다며 인사차 들린 신혼부부를 보내고 나서 필자는 깊은 상념에 빠졌다.

과연 인생을 함께 새로 출발하는 저 사람들에게 주례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결혼생활을 해 왔는가. 그리고 그에 합당한 멋지고 알찬 주례사를 했는가.

그 후 몇 사람의 주례를 맡으면서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게 됐고 참되고 알찬 주례사를 하기 위해 애를 썼다. 가능한 한 기억하기 좋고 쉬운 문장이면서도 심오한 문구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마음에 쏙 드는 세 가지 문구를 찾아냈고 가능하면 신혼부부에게 세 가지를 모두 일러줬다. 간혹 시간이 촉박할 때는 그 중 하나를 뽑아 주례사에 사용하기도 했다.

그 첫번째가 상선약수(上善若水)다. 이 말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최고의 지혜는 물처럼 처신하며 살아가는 것’이란 뜻이다. 세상을 살아갈 때 물처럼 살아야 한다. 세상 어디를 가나 모두에 맞춰주고 자신의 형태는 없지만 세상 그 어디에도 모두 담겨 있는 게 바로 물이다.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언제나 부드러운 표정으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에게서 우리는 인생의 진리를 배워야 한다.

다음은 역지사지(易地思之)다.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인디언 속담에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어리석어서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결혼하는 신랑신부는 살아온 환경과 유전자가 사뭇 다르다. 살아가다보면 좋은 일보다 오히려 짜증스럽고 좋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을 수 있다. 의견차가 생기고 언쟁이 벌어졌을 때 상대방을 굴복시키려들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사려 깊은 행동을 하면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번째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다. 화엄경에 나오는 문장으로 누구나 보살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고 이런 보살수행의 핵심은 이타행(利他行)을 통한 중생구제에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말이다. 단군이 주창하신 ‘홍익인간’과 같은 개념이다. 제 혼자만 잘 살아서는 안 되며 더불어 잘 살도록 남에게 더 많이 배려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약대 후배 장남 결혼식을 끝으로 더 이상 주례를 하진 않았지만 이 세 문장은 아직도 필자의 생활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또 그 동안 필자가 주례를 섰던 신혼부부들의 가슴 속에도 살아 숨 쉬고 있을 걸로 믿는다.

<류관희 전 재울 강원도민회장 /약사 >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