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의 쥐
예배당의 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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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 동안 한국에 머물렀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민들의 영혼에 남긴 울림이 적지 않다. 교황은 겸손하면서도 친근했다. 그의 말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정확하고도 날카로웠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배려를 주문하고 몸소 모범을 보였다. 화해에 앞서 용서할 것을 가르쳤다.

국민들은 그런 교황을 바라보면서 상처받고 지친 영혼을 잠시라도 달랠 수 있었다. 공동체의 지도자들에게는 자성의 화두를 건넸다.

하지만 교황의 이런 모습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삶의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감동하는 것은 지금까지 보아온 교회의 지도자들이 성경에서 그만큼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라는 반증이다.

방한기간 교황의 행보에 감동한 것은 천주교인뿐만 아니었다. 비천주교인들에게도 소중한 가르침을 남겼다.

하지만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은 여전히 빗장을 걸어 잠갔다. 불편한 심기도 곳곳에서 노출했다.

한 개신교 역사신학자는 지난 16일자 어느 기독교계 신문에 ‘교황의 한국방문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그 신학자는 천주교회 교황직의 유래를 설명하면서 역사적 폐해를 지적했다. 그는 “교황직은 변질된 교회관, 교계(敎階)제도의 산물”이라며 “교황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 조직체가 아니라 수많은 적대감과 비극으로 얼룩진 인간 중심의 제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개신교인들을 향해 “지난 역사를 헤아리는 안목과 교황 방문이 오늘의 우리 교회에 가져올 파장을 성찰하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의 지적은 16~17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종교개혁 지도자들의 견해를 이어 받은 것이다. 개신교 보수교단들의 입장은 대체로 그 신학자의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느 목사는 교황 방한을 보도한 언론계에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언론이 지나치게 보도분량을 할애했다는 것이다.

개신교 보수교단들의 천주교회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종교개혁 시기에 머물러 있을 뿐 아니라 당시의 적대감마저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그러나 개신교회인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기장 총회는 교황의 방한에 앞서 “천주교의 최고 지도자이자 세계인들로부터 평화의 사도로 존경받는 교황의 방한을 환영한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자고 강조하는 그리스도의 진정한 사도요, 이 시대의 진정한 지도자”라는 논평을 냈다. 이 논평은 또 “(교황은)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로 본래 모습을 잃어가는 교회와 교인들을 향해 사회의 구조악을 직시하고 사회개혁에 적극 참여하라는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인류의 자유와 해방, 사랑과 평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영문법의 동급비교라는 것을 배울 때 등장하는 예문이 있었다. ‘as poor as a church mouse’라는 문장이다. ‘예배당의 쥐처럼 가난하다’는 뜻으로 ‘매우 가난하다’는 표현을 그렇게 한다. 하지만 ‘교회는 원래 가난한 곳’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이 말은 이제 적절하지 않다. 교회가 가난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교회’는 청교도주의(淸敎徒主義)의 산물이다. 청교도주의는 또 종교개혁운동의 일환이었다.

종교개혁의 근본정신과 교황의 메시지에서 차이점을 찾지 못하겠다.

<강귀일 취재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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