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연구는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
“지역문화 연구는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
  • 구미현 기자
  • 승인 2014.08.19 2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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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대 국어국문학부 성범중 교수
지역 최초로 ‘울산지리지’ 집대성
고전 강독 모임 ‘이문상우’이끌며 한학 발전 도모
오역 관련 “책 삭제할 수 없어 자신의 글 책임져야”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성범중 교수(58)는 울산 한학 연구에 필요한 인물 가운데 한명이다.

경북 상주 출신인 그는 1987년 울산대 교수 임용과 동시에 울산에 정착했다.

이후 30여년 동안 울산 지역 문화 연구를 위해 앞장서오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범중 교수의 역할은 빛났다. 한시 전공인 그는 산천을 돌아다니며 현판 등 잘못 적혀있거나 해석된 글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어떻게 해서라도 바로잡았다. 작천정 주련(柱聯)이 그 대표적인 예다.

성 교수는 울산지역 전통 문학을 정리하기도 했으며, 지역 민요를 분석한 책을 내기도 했다.

그가 이번에는 울산지역 지리지를 최초로 집대성한 ‘울산지리지’ 편찬 작업에 실무위원으로 참여했다. 지역 출신이 아니면서 울산 지역 문화 연구를 위해 열정을 쏟는 이유가 무엇일까?

‘울산지리지’ 발간 과정과 울산 한학의 현 주소를 듣기 위해 19일 성범중 교수 연구실을 찾았다.

-울산에서 처음으로 지리지서가 발간됐다. 분량도 상당하다. 발간 자체가 대단히 의미있는 일 아닌가?

그렇다. 이번에 번역된 울산지리지 1.2는 삼국사기 지리지에 실린 울산 언양 관련 기록부터 1990년경에 완성된 언양현읍지까지 모두 15종 25편의 자료를 번역하고 주석한 것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울산 관련 지리지와 읍지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엄형섭 선생을 비롯한 실무위원들이 많은 고생을 했다.

-작업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기초자료라 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있는 자료들은 각기 흩어져 있거나 한문으로 기술돼 있었기 때문에 지역에서 향토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나 일반인이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극히 일부분이 번역돼 있기는 하지만 오래전 번역이라 현재의 문체와 동떨어진 것도 많았다. 번역상 오류나 사실이해에 대한 착오도 많아 올바른 기초자료라 할 수 없었다. 이때까지 그런 자료들이 확대 재생산돼 왔던 것이다. 그동안 역사적 진실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 어려운 작업에 선뜻 참여한 이유는?

솔직히 말하면 ‘선뜻’ 참여하지는 않았다. 주변에서 권유가 많았다. ‘나 아니면 안된다’는데 어쩌겠나 고민하다 덜컥 수락했지. 사실 울산의 역사와 지리에 관한 정확한 사실을 알릴만한 지리지 작업이 필요하다는데에는 적극 공감하고 있던 터였다. 다만 그 자료를 모아 원문을 번역하고 주석을 다는 번거로운 작업을 감당해야 하는데 내가 앞장서기에는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필요성만 느낀채 오랜 침묵의 기간이 이어졌다.

그러다 문화원연합회에서 이 작업을 추진한다기에 의미 있는 사업이라 여기고 제대로 된 1차 텍스트를 만들어 보자란 생각에 참여하게 됐다.

-책 소개를 좀 해달라

이 책은 기본적으로 지리적 환경과 역사적 인물, 인문학적 배경과 전통 문화를 포괄한 울산시 지역의 종합 인문지리지라고 규정할 수 있다.

울산시와 관련된 지리지를 한꺼번에 모두 정리하고 번역할 수 없어 우선 역사적으로 비교적 앞선 시기에 제작된 자료를 정리했다. 이 책에서 다룬 대표 자료는 삼국사기(1149년) ‘지리지’편에서 시작해 ‘경상도지리지(1425년) 울산군·언양현’,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울산군·언양현’ ‘학성지(1749년)’ ‘언양현읍지(1880년)’ 등이다. 책의 번역은 가능한 한 현재의 문장으로 표현했다.

 

 

-울산지리지를 보다 보니 선인(先人)들도 앞에 나온 책을 그대로 베낀 경우가 많더라.

맞다. 책의 자료를 잘 대비하면서 읽어보면 동일한 사실이 반복적으로 되풀이 되는 경우도 있고 원래와 다르게 변형되거나 왜곡돼 표현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탈루된 곳도 있다. 또 어떤 사실이 여러 문헌에서 반복되기도 하고, 특정문헌에만 수록돼 있기도 하다. 이처럼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은 그 내용에 덧붙이고, 또 덧붙이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울산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책은 많지 않은데 충효예 관련된 사람들 숫자만 추가되니 새로운 내용보다 분량만 늘어난 경우가 많다.

-최근 울산시에서 발간된 책들이 오역· 왜곡 등의 문제로 논란이 됐었다.

그 점은 문제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글은 쓰면 안된다. 글이란 것은 한번 쓰고 나면 두고두고 회자된다. 요즘 유럽을 중심으로 ‘잊혀질 권리’가 논쟁이 되고 있는데 이것은 인터넷상에만 해당된다.

인터넷 글은 삭제하면 되지만 책은 ‘분서갱유(焚書坑儒)’ 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의 글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울산 문화계에도 담론 문화가 형성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점에 공감한다. 울산에서 한학 연구를 하는 사람들끼리 내편, 네편 갈라서 자기 주장만 할 게 아니라 소통하고 화합했으면 좋겠다. 기자들이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할수 있는 담론을 형성해달라. 그런 게 기자가 해야 할 역할 아닌가?

-현재 교수님을 주축으로 한학 스터디 모임을 이끌고 있다고 들었다.

스터디 모임이라기 보다 관심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고전을 읽고 연구하는 모임이다.

‘이문상우(以文尙友)’가 우리 모임 이름이다.

‘이문회우(以文會友)’와 ‘상우천고(尙友千古)’의 앞 두자를 따서 지었다.

해석을 하자면 ‘글을 통해서 친구를 만나고, 글을 통해서 1천년전에 사람과 벗한다’라는 뜻이다. 혹시나 책을 낼 경우를 대비해 정식 명칭도 지었다. ‘울산고전강독회’라고… 이름은 지어놨는데 책을 낸 적은 한번도 없다.(웃음)

-‘이문상우’ 뜻이 멋지다. 모임 구성원은 누구누구가 있나?

인원은 8~9명 정도다. 작고하신 이수봉 전 충북대 교수도 우리 모임 멤버였다. 양명학 울산대 명예 교수도 예전에는 모임에 나오셨지만 지금은 개인사정으로 못 나오신다. 현재는 신형석 대곡박물관장, 박채은 전 국사편찬위원, 최윤경 우신고 역사교사, 엄형섭 부산대 한문학 박사, 조상현 울산대 불교미술학 박사, 박미연 울산박물관 학예사, 최윤진 울산시 문화예술과 학예사 등이 있다.

-관심있는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인줄 알았더니 멤버들 면면이 울산에서 내로라 하는 한학, 역사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일반인들도 관심 있으면 참가할 수 있다. 다만 고전을 읽을 수 있고 강독 원고를 만들어 올수 있어야 한다.(웃음)

-오늘날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이 나온지 한참 됐다. 한문을 배우려고 하는 학생들도 거의 없을 듯한데

한문뿐만 아니라 역사 문학 철학 등 인문학 위기설이 도래한지 한참 됐다. 일단 취업에 급급한 사회 현상 때문에 그런 것이니 이런 구조적 문제가 바뀌지 않는 한 위기설은 늘 나오는 얘기일 것이다.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울산지역 한학이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나

울산은 예전에는 해안을 침범하는 왜구 방비의 최전선인 척박한 변방의 하나로 인식됐다.

하지만 오늘날 울산은 반구대 암각화를 비롯해 울산 12경이 있을 정도로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지 않나. 이처럼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울산인 만큼 인문학적 문화도 발전되리라 본다.

성범중 교수와 인터뷰하면서 그가 지역에 대한 애정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자가 업적을 치켜세울 때 마다 그는 “역사나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일 뿐이며 안하는 게 비정상”이라고 칭찬을 마다했다. 방학이라 학생들이 떠나간 텅 빈 울산대 인문학 건물 14동 4층 연구실을 지키고 있는 성범중 교수. 그의 지역 문화 연구에 대한 열정이 계속되는 한 울산의 문화 발전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글·사진=구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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