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와 ‘산타 프란치스코’
‘8월의 크리스마스’와 ‘산타 프란치스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18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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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전, 교황을 태운 비행기가 한국 땅에 내려앉았다.

이번 방한은 교황의 평소 검소한 성품이 그대로 반영돼 전용기, 전용차, 호텔 숙소 등은 물론이고 TV 화면에 비친 공항 행사까지 간소했다. 30년 전 요한 바오로 2세가 최초로 방한하며 ‘순교자의 땅’ 바닥에 입맞춤한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땅에 입맞춤하는 대신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편안한 시선으로 인사했다.

필자가 20대이던 시절 온몸으로 친밀감과 특별한 애정을 표현하던 요한 바오로 2세의 친화력도 인상 깊었지만, 평화가 화두임을 밝히며 시종일관 온화한 미소로 환담하는 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 모습은 보다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했다. 서울공항에 도착해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전용 방탄차 대신 1천600cc 한국산 소형차를 타고 숙소인 주한교황청대사관으로 이동하며 특유의 청빈한 인품을 드러내 ‘낮은 곳’을 향하는 ‘가난한 자의 아버지’ 다운 발걸음을 했다.

교황의 전용 방탄차량은 암살과 테러 위협 등으로부터의 보호 때문이지 특권을 과시할 용도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교황은 지난해 취임 이후 “교황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방탄차를 타지 않겠노라 천명하고 “내 나이에는 잃을 것이 많지 않다. 모든 것은 신의 뜻에 달렸다”는 말로 주위의 우려에 답했다 한다. 종교를 떠나 세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이유가 바로 약자 편에 서서 사회적인 개혁을 이끌어 가는 교황의 낮은 행보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이야기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이 확정되고부터 우리나라에서는 프란치스코 배우기 열기가 일어 교황의 첫번째 권고 문헌인 ‘복음의 기쁨’이 발간 한 달만에 2만 부가 넘게 팔렸고, 교황의 생각과 사목방향을 알아보는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 또 교황의 낮은 걸음을 경외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행복 십계명은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미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자신의 방식대로 인생을 살되 타인의 인생을 존중하라. 타인에게 마음을 열라.(자신만 생각하고 살면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고인 물은 썩는 법이다. 고요히 전진하라.(친절과 겸손은 우리 삶을 고요하게 이끈다.) 건강하게 쉬어라.(소비주의는 우리에게 늘 걱정과 스트레스를 주고 건강한 여가 문화를 앗아가 버렸다. 식사 시간만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서로 얘기를 나누라.)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라.(일요일은 쉬는 날이다. 가족을 위한 날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에 품위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줄 혁신적인 방법을 찾으라. 자연을 존중하고 돌보라.(환경 파괴는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 가운데 하나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라.(다른 사람들을 험담하는 것은 자존감이 낮다는 뜻이다. 이는 ‘나 자신이 너무 비천하므로 다른 사람을 깎아내릴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빨리 버릴수록 좋다.) 타인을 개종하려 하지 말고 다른 이의 신앙을 존중하라. 평화를 위해 일하라.(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평화를 위한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한다. 평화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상태가 결코 아니다. 평화는 늘 앞서서 주도하는 역동적인 것이다.)’

교황이 아르헨티나 주간지 비바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행복한 삶을 위한 십계명을 우리나라 카톨릭 뉴스에서 번역한 내용이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방식대로 인생을 살되 타인의 인생을 존중하고 타인에게 마음을 열라’는 메시지는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이 항상 과제였던 우리에게 아주 적절한 주문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 산타 프란치스코가 미리 우리 머리맡에 가져다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인 것 같다.

<오나경 서양화가/약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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