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회-5. 부왕의 죽음(7)
55회-5. 부왕의 죽음(7)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18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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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하, 전하를 홀로 저승으로 보내신다는 것은 살아 있는 신하로서의 도리가 아니옵니다. 어떻게 해서든 시종들을 전하를 따라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수위는 뜻을 굽히려 하지 않았다.

“전하께서 생전에 엄명에 가까울 정도로 유언을 남기셨는데 그 말을 거역한다는 것 또한 자식의 도리가 아니며 이 나라의 왕업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닐 것이다. 부왕께서는 생전에 누차 말씀하시었다. 연맹국의 여러 나라가 그러하더라도 더는 순장을 풍습을 없애라고 누차 말씀하시었다.”

진수라니 한기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전하를 따라 죽어서 전하를 모셔야 할 그들을 살려 두는 것은 법도가 아니오며 신하로서 도리가 아니옵니다.”

“나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부왕께서는 차라리 한 명이라도 더 살려서 그 사람들과 함께 외침으로부터 이 나라를 지키라 하시었다.“

“저하, 황공하옵니다.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전하의 뜻이 그렇게 깊고 넓으신 줄은 신은 차마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사옵니다. 전하의 높고 깊은 뜻이 참으로 황공할 따름이옵니다.”

이수위는 이마를 바닥에 박고 엎드려 흐느끼며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자 부음을 들은 연맹국의 사신들이 다라국으로 들어왔다. 가라국(대가야) 이수위가 와서 진패주왕의 서거를 애도하며 열흘 동안이나 머물다 돌아갔다.

가라국의 이수위가 돌아가는 날 아라국(함안가야)의 사신이 와서 애도 하고 그 다음날엔 탁순국(창원가야)의 하한기가 수행원 열 명을 데리고 황강을 건너왔다.

신라에선 사람이 오지 않았으나 사비성에서 온 사신이 한 무리의 군사를 대동한 채 궁성 밖에 도착했을 때 빈청은 더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왜사신 게루노오미가 수행원을 데리고 도착했다.

여러 나라의 사신들은 제 각기 한기 진수라니를 만나 조의를 표하고 예물은 전하고 빈청으로 물러나서 장례일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의 사신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자국의 사정과 입장을 전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빈청은 마치 다국의 회의장이 된 것처럼 연일 소란하였다.

그러나 단 한 나라 졸마국(함양가야)에선 끝내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진수라니는 졸마국에서 이제는 마음을 돌려 사람을 보낼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부음을 전하고 3개월이 지나고 열흘이 더 지났는데도 졸마국에선 한 사람의 사절도 오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졸마로 갔던 진수라니의 동생 진치유도 오지 않았다.

‘왕비를 폐위한 것은 부왕의 실책이었을까? 아니면 나라를 지키려는 강한 의지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한기 진수라니가 여태껏 풀지 못한 의문이었다. 까마득한 세월의 저편에 묻혀 있는 부왕의 아픈 과거, 거기에 또한 진수라니의 슬픈 과거이기도 했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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