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회-5.부왕의 죽음(5)
53회-5.부왕의 죽음(5)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13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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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라(금관가야) 국왕이 신라에 투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 진패주왕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왕은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승하했다. 몸이 노쇠하여 나라의 모든 일을 태자 진수라니 한기에게 맡기고 뒤로 물러났던 왕은, 남가라 국 왕이 왕비와 왕자들을 데리고 신라에 투항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몇 번이나 탄식하고 식음을 끊으시더니 하루 만에 숨을 거두었다.

한기 진수라니는 부왕의 호흡이 고르지 못하고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밤새 옆에서 부왕을 지켰으나 새벽녘에 숨을 거두셨다. 한 나라의 국왕의 길이 어둠 속에 길이 끝났다. 왕의 일생이 끝난 그 어둠 속에서 갑자기 왕국의 숨결도 멈추어버린 것 같은 고요로 날이 밝았다.

급보를 받은 대신들과 성주, 그리고 각 군영의 군장들이 속속 궁성의 별궁으로 달려왔다. 상수위 아사비가 가장 먼저 달려왔고 그 뒤를 이어서 이수위 무도치가 달려왔다. 대신들과 달려온 성주들도 모두 궁성의 별궁 앞에 엎드려 배례하고 소리 내어 울었다.

“이 나라 다라국의 국주이시고 황금 왕국의 대왕이신 진패주왕께서 간밤에 궁성 별궁에서 훙(薨)하셨다. 일찍이 선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사십 성상 동안 이 나라의 위업을 달성하시었다. 지혜롭고 인자하여 만백성을 두루 살피시고 백성의 집을 내 집처럼 보살피셨다. 심산유곡에서 황금석을 캐어 황금 제국을 만드시고 무쇠를 단조하여 그 기술을 만백성에게 가르치시니, 무릇 그 소문이 멀리 왜와 한나라에까지 이르렀다.

외방의 침입을 막으려 몸소 변경에 이르시어 병졸을 살피고 무예를 연마케 하고 십여 개의 성을 새로 쌓아 나라의 방벽을 두터이 하니 백성들의 살기가 태평하였다. 대국의 침입에도 의연히 맞서 싸우시어 대국의 병력을 물리친 것이 수십여 차례였다. 연맹의 여러 나라와 유대를 강화하고 타국이 외적의 침임을 받을 때 병력을 보내어 돕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노쇠하여 기력을 잃으신 이후에도 나라의 일을 염려하여 잠 못 이루시는 날 여러 날이었다. 그리하여 노환을 더 재촉하여 훙하시니, 하늘에서 해가 떨어진 것과 같은 심정이고 땅이 끝난 곳에 선 것과 같은 기분이다. 만백성에 이를 고하고 연맹의 여러 나라에도 부음을 알리어 대왕의 위업을 기리게 하라.”

진수라니는 급보를 듣고 달려와 별궁 앞에 엎드려 있는 대신들 앞으로 나가서 부왕의 서거를 그렇게 알렸다. 진수라니의 음성은 간간이 울먹이듯 가늘게 떨렸다.

“황공하옵니다.”

대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어찌 하겠나. 이것이 또한 하늘의 뜻이라면 어찌 거역할 수 있겠나…….”

한기 진수라니는 목이 메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저하, 하늘의 뜻이 무정하옵니다.”

상수위 아사비가 눈물을 글썽이며 머리를 조아렸다.

글/ 이충호

그림/ 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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