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회-5. 부왕의 죽음(3)
51회-5. 부왕의 죽음(3)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11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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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위 무도치가 물러가고 진수라니 한기는 텅 빈 공간에 혼자 남았을 때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이수위가 절규처럼 남기고 간 말이 아직도 환청처럼 귀에 울렸다.

‘남가라국(금관가야)의 멸망은 거기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더 큰 몰락의 시작일지 모른다. 남가라국이라는 거대한 방벽이 없어지면 가야연맹의 여러 나라들은 이제 맨살을 드러낸 채 신라와 맞서야 할 것이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진수라니 한기는 백척간두에 홀로 선 심경으로 궁성 너머 먼 산들을 바라보았다.

남가라국에서 소식이 시시각각으로 전달되어왔다. 전황은 갈수록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의 해가 뜨면 또 다른 패전 소식이 날아들었다. 진수라니 한기의 마음은 갈수록 무거워졌다.

“오늘은 화다를 공격하여 가축을 도륙하고 그곳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고 하옵니다.”

이러한 전황을 보고받은 지 삼일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전황이 날아들었다.

“저하, 말씀드리기 황송하오나 어제는 신라 이사부의 병력이 마침내 비지(웅천)를 공격하여 마을을 불태우고 남녀노소, 아이 밴 여자 할 것 없이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신라의 땅으로 데려갔다 하옵니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칼을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전황을 가져온 전령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사부의 병력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다고 하는가?”

이미 예견된 일이었지만 진수라니 한기의 마음은 불안하고 초조하였다.

“지금은 수나라 웅천에 머물고 있으나 왕궁만은 공격하지 않았다고 하옵니다.”

“이제 김구해왕이 신라에 나라를 내어주는 일만 남았겠구나.”

진수라니는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말이 너무 침통하게 들려 옆에서 있는 사람들이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진수라니가 했던 말은 현실이 되어 날아왔다. 가락국의 김구해왕이 항복했다는 비보였다.

“가락국의 국주인 김구해 왕이 신라에 투항했다고 합니다.”

비보를 들고 온 사람은 상수위 아사비였다. 상수위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이미 예견한 일이었지만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진수라니는 앞이 캄캄해졌다.

“그래, 마음을 안정시키고 그 전황을 보다 상세히 말해 보라.”

“구해왕은 왕비와 그의 세 아들 노종, 무덕, 무력을 데리고 신라의 법흥왕 앞으로 가서 항복하였다고 합니다.”

“직접 신라로 갔다고 하는가?”

“그러하옵니다. 왕비를 마차에 싣고 세 아들과 왕은 말을 타고 직접 서라벌로 갔다고 합니다.”

“그 신하들은 어떻게 되었다고 하는가?”

“신하의 대부분은 왕을 따라갔으나 한 두 신하가 왕을 따라 가기를 거부하고 수로왕릉에 가서 통곡한 뒤 머리를 풀고 산 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들의 행각이 눈에 보이는 것 같구나.”

진수라니 한기의 말이 탄식처럼 들렸다.

글 / 이 충 호

그림 / 황 효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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