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부왕의 죽음(2)
5. 부왕의 죽음(2)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1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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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신라의 탁기탄국(영산가야) 병합이 남부여(백제)를 자극하여 남진하게 하고, 남부여의 남진은 또 신라를 자극하고 서로서로 물고 물리는 형국이 되고 말았단 말씀 아니옵니까?”

이수위 무도치가 말했다.

“그야 물론이지. 그러다 보니 탁순국(창원가야) 국왕 아리사등(기능말다간기)이 급기야 왜사신 게누오노미를 중재인으로 보내 제의하기를, 탁순국과 남가라(금관가야)에서만은 신라 남부여 어느 나라도 영역 다툼을 하지 말고 평화 지역으로 삼아 달라고 하였지만, 어느 나라도 거기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이수위도 잘 알고 있는 일이 아닌가?”

진수라니 한기의 말이 무겁게 들렸다.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런 제의가 귀에 들어올 리가 있었겠사옵니까?”

“그렇겠지. 신라로선 서쪽으로의 진출과 해상 교역의 중심지인 남가라국까지도 남부여에게 빼앗겨 버릴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남가라국으로 진출을 서둘렀다고 볼 수 있지.”

“신라의 입장에선 당연한 선택이었단 말씀이옵니까?”

이수위가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다다라원(다대포)에 병력을 주둔 시키고 거의 석 달 동안이나 그들의 의도를 내비쳤으나 남부여나 왜국 그리고 당사국인 남가라국(금관가야) 어디에서도 반응이 없자 신라는 마음 놓고 낙동강을 건넜던 것이 아니겠는가.”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이수위 무도치의 말에는 자조적인 감정이 실려 있었다.

“남가라국이 적극적인 방어 태세를 취하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석 달 동안이나 다다라원에 주둔하면서 그들의 의도를 들어냈는데도 남가라의 김구해왕이 적극적인 방어 태세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통탄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수로왕께서 하늘에서 내려와 나라를 세우고 그 바다와 땅을 지배하는 대왕국을 이루어 온 지가 어언 5백 년의 세월인데 어찌 그리 무력하게 대항할 수 있었단 말인가?”

진수라니 한기의 한숨 섞인 말에는 남가라 국왕에 대한 실망이 묻어났다.

“신도 남가라 국왕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옵니다. 이미 예견된 일인데 그리 방비를 허술히 하고 병력이 그다지 무기력하였는지 비통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사옵니다.”

“왜 그러지 않겠나. 수로왕께서 사로(서라벌)의 석탈해가 침략해왔을 때도 단숨에 물리치고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남진하여왔을 때도 비록 많은 상처는 입었지만, 나라를 굳건히 지켜내었던 남가라국의 그 힘이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어디 그뿐이겠사옵니까. 왜국의 구석구석에까지 무쇠와 그릇, 그리고 온갖 물건을 만드는 기술을 전하고 규슈에 가야의 분국(分國)을 세웠던 그 강성한 대국이 아니었사옵니까. 그런 대왕국이 어찌 그리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이옵니까?”

체념 어린 이수위 무도치의 말이 절규처럼 아프게 들렸다.

글=이충호/ 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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