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내부의 적(敵), 가혹행위
국군 내부의 적(敵), 가혹행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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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부대에서 발생한 윤 일병 사망사건을 접하는 국민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

병영내 가혹행위 사건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번 사건은 그 경위를 납득하기가 어렵다. 대답을 똑바로 못한다는 이유로 치약을 짜 먹였다든지, 바닥에 가래침을 뱉고 핥아 먹으라고 했다는 대목에서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사고 부대는 의무부대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가해자들은 윤 일병의 성기에 액체 안티프라민을 바르기도 했고 계속되는 폭행으로 힘들어 하는 윤 일병에게 비타민 수액을 주사하고 나서 또 폭행을 가했다고 한다.

군인권센터가 밝힌 사건일지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기자는 도저히 이를 믿을 수 없다. 어쩌면 믿기 싫은 것일 수도 있다.

기자도 1980년대에 사병으로 복무했다. 당시 병영내에서 횡행했던 가혹행위 폐습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윤 일병 사건에 적시된 사례는 없었다.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다.

예전에 있었던 악습이 아직도 근절되지 않았다면 몰라도 예전에도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니 믿기 어려운 것이다.

혹독한 가혹행위를 가했던 선임들이지만 전역후에 만나면 얼싸안으려 반가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고동락하며 쌓았던 전우애가 좋지 않았던 일은 모두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육군참모총장이 책임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예로부터 군율(軍律)은 엄격했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말도 있다. 제갈량이 아끼던 부하, 마속을 눈물을 흘리면서 참형으로 다스렸다는데서 유래한 말이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 영화 ‘명량’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두려움으로 탈영한 부하를 냉정하게 참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군대라는 특수환경에서 구성원들의 긴장감 유지는 필수적이다. 전투력을 극대화하려면 고도의 훈련과 일사불난한 명령체계 유지도 불가피하다. 그렇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우리 군대에서 구타와 얼차려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았던 것이다.

일선부대 지휘관들은 병사들의 부모들에게 “요즘 군대에서는 가혹행위가 사라졌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국군창군 이래 가혹행위가 합법인 적은 없었다. 최고 지휘부의 묵인과 방조 그리고 은폐, 축소 관행에 묻혀 폐습으로 남은 것이다.

문제는 병영문화이다. 국군의 기원을 일제강점기 중국 충칭에서 발족한 한국광복군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해방후 미군정에서 창설됐던 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육군의 모체인 국방경비대에는 광복군 출신들도 있었지만 일본군 또는 만주군 출신들이 주축이었다. 훗날 해군으로 재편된 해안경비대는 일본군 출신 일색이었다. 광복군에는 해군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우리 국군에는 구일본군 병영문화가 답습됐던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제의 잔재를 청산해야 할 우리나라에서 일본군대의 악습을 뿌리뽑지 못한다는 것은 민족정서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70년이나 묵은 병영문화를 일신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삭은 가지 몇 개를 잘라내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다. 중장기 계획을 세워서 근본적인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일본 속담에 ‘적은 내부에 있다’라는 말이 있다. 전국시대 천하통일을 눈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부하의 공격을 당해 자결하게 된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병영내 가혹행위는 국군 내부의 적이다.

<강귀일 취재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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