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일몰(日沒)
아름다운 일몰(日沒)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8.0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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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산으로 넘어가는 일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사라 무심히 넘기기 일쑤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밤사이 수많은 별들이 명멸한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사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별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처럼 가까운 수많은 삶들이 왔다가 다시 어디론가 되돌아가는 일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그런 사실에 생각이 미치면 우리네 하루하루의 삶이 새삼 소중하다는 걸 느끼게 되고 언젠가 나 또한 돌아가는 날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무심코 지나치던 일몰의 순간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제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일전에 부산 해운대 모처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 며칠을 묵어야만 했었습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우두커니 바다를 바라보거나 광안대교를 오가는 무수한 차량들에 눈길을 주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무렵, 완전하게 둥근 선홍빛 해가 광안대교 교각 꼭대기에서 천천히 기둥을 타고 내려와 건너편 아파트 옥상에 잠시 내려앉더니 이윽고 아파트 숲 너머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여느 때의 일몰과 달리 조금도 이글거리지 않으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숯불 빛 같은 또렷한 빛깔을 간직한 채 한 순간 저녁 무렵의 서쪽 하늘을 수놓고 말없이 시야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정말 눈부시지 않아 좋았습니다. 눈부시지 않기에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눈부시지 않아도 제 빛깔을 오롯이 지닌 그 일몰의 순간이 너무도 아름답게 각인되어 오랫동안 눈에서,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네 삶도 어느 시점에서 저녁 해처럼 지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어느 책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사람의 일생을 80년으로 보고, 그걸 하루 시간에 견주어 자기의 인생 시간을 매년 측정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어림잡아 제 시간도 오후 4시 30분은 족히 되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서 오후 네 시 반이면 퇴근 시간이 되어갈 무렵입니다. 밀린 일들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죠. 그렇게 해서 6시쯤에 퇴근하면 어느 날은 친구와 저녁 약속이 잡혀 오랜만에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할 겁니다. 때로는 일찍 집으로 돌아가 저녁밥을 맛있게 먹고 난 뒤 아침에 못다 본 신문도 읽고, 뉴스도 보고, 모처럼 아내와 드라마 한 편도 같이 볼 수 있는 달콤한 시간이 기다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다 잠든 사이 자정이 지나가겠지요.

삶의 ‘하루’ 여정에서 4시 30분은 이제 인생의 활동기 30년을 서서히 정리할 시간입니다. 그리고 머잖아 일에서 해방되어 휴식의 시간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곧이어 삶 전체를 정리해야 할 순간도 어김없이 다가오고 끝내는 긴 잠에 들어야 할 시간도 닥쳐오겠지요. 서녘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떨어지던 그 해처럼 말입니다.

그 마지막 순간의 우리네 모습이 ‘광안대교의 저녁 해’를 닮았으면 합니다. 눈부시지 않아도 뚜렷한 제 빛깔을 간직한 뒷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낮 동안 뜨겁게 세상을 밝히고 남은 불씨를 품어 숯불 같은 은은한 온기를 세상과 이웃에 남길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요. 그래서 ‘아, 눈부시지는 않았어도 오롯이 제 빛깔을 가진 지난날이었다.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날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김홍길 신언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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