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회-4. 모반과 추억(8)
44회-4. 모반과 추억(8)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7.31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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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국은 백제의 무쇠 제철 기술자들이 건너가서 땔감이 풍부한 지역의 고을을 차지하고 그 곳의 사철로 무쇠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왜국인들도 철 제련법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그 기술은 아라국(함안가야)이나 다라국(합천가야)보다 훨씬 뒤쳐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밀거래가 성행하기도 했다. 철의 교역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철을 훔쳐가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그런 일로 인해서 선왕들은 자주 노발대발했다.

“철을 밀거래하거나 훔쳐가다 잡힌 자는, 사람을 죽인자보다 더 엄한 벌을 주어라. 철의 기술을 유출한 자는 끓는 쇳물에 넣어 죽여라.”

이러한 국법이 형성된 것은 나라를 세우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그 후 2백여 년 동안 그 법은 다라국의 중심적인 법이 되어왔다.

진수라니 태자는 야철지를 관리하는 직책을 처음 맡았을 때 더 많은 철을 생산하기 위해 야철지에서 고로장들과 함께 밤을 새우며 일을 독려했다. 그는 철광석으로 철을 제련하는 방법 이외에 처음으로 깊은 계곡과 하천에서 사철(砂鐵)을 채집하여 제련하는 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황금의 강이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황강에서 사금(砂金)을 채집하여 제련하는 일도 성공시켰다.

그 뒤 진수라니 태자는 다시 황강에서 사금을 발견하여 제련에 성공했다. 황강의 사금은 주변의 높은 산에서 풍화작용으로 분해되어 하천으로 운반되어 침적되어 있는 것이었다. 황금을 제련하는 일도 철의 제련과 다를 바는 없었다. 야로의 야철지는 오래 전부터 철을 제련하는 고로 이외에 황금을 제련하는 고로를 별도로 갖추고 있었다.

황금을 제련하는 방법은 무쇠의 제련과 비슷했으나 그 규모가 무쇠만큼 크지는 않았다. 황금은 왕관이나 귀고리를 만드는 데 쓰였고 용봉문 환두대도를 치장하는 데도 많이 쓰였다. 다라국의 황금은 그 소문이 멀리 한(漢)나라를 넘어 서역에까지 퍼지면서 황금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오기도 했다.

“갈화성(竭火城)(울산지역)에 가서 그곳의 철 제련법을 알아보자.”

진수라니 태자는 신라의 철 제련법이 알고 싶어졌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진수라니는 더 미룰 수가 없었다.

“먼저 그곳의 사철 채집 방법과 제련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곳의 철 제련법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신라와 맞설 수 없다.”

진수라니가 혼자서 생각했다. 자신의 생각을 부왕에게 아뢰었을 때 부왕은 두 말 않고 승낙했다.

진수라니는 고로 장인들 중에서도 가장 재능 있는 장인 두 명을 골랐다. 그들에게 신라인 복장으로 변장하고 자신도 신라의 의복으로 갈아입었다. 자신의 행선지에 대해선 부왕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말리지 않았다. 자신의 비(妃)에게도 자신이 신라의 갈화성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쉬지 않고 간다면 삼일이면 갈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진수라니는 갈화성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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