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信賴)에 대한 단상
신뢰(信賴)에 대한 단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7.2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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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문득 신뢰라는 말이 낯설다. ‘나는 너를 신뢰한다’ 잠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엄청난 표현이다. 나를 너에게 맡긴다는 표현으로 어쩌면 사랑이란 말보다 더 애절하고, 간곡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어로는 Trust 또는 Faith로 번역된다.

그런데 두 단어 모두가 in을 수반한다. ‘~ 안에’라는 대상의 속 마음에 대한 믿음이며, 그 신뢰의 주체는 내가 된다. 네이버 세계문화사전에서는 Trust의 어원을 ‘편안함’을 의미하는 독일어의 trost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믿을 때 마음이 편안해 진다. 혹시 그 사람이 배신을 하지 않을까 하고 염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질 뿐만 아니라 배신을 위한 예방에 들여야 할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게 해 주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자로 풀어보면 믿을 신(信), 의지할 뢰(賴)로 되어 있다. 신(信)은 ‘사람의 말을 믿는다’는 것으로 신뢰는 ‘사람이 하는 말을 믿고 의지한다’라고 풀어 볼 수 있겠다.

최근 매스컴에서는 공직자의 임명을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수 많은 말이 오가고 있다. 대상자의 천거는 그 분이 지난 시간에 한 말을 믿고 의지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청문회라는 과정에서 그 믿음이 의심받는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신뢰를 하는 사람과 신뢰를 받는 사람, 그리고 그 신뢰를 의심하는 사람들 사이에 오고 가는 수 많은 말들. 우리는 일련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국력이 소모되고 있는지를 보고 있다. 편안하게 의지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월드컵 축구시즌을 지나면서 서서히 잊혀지고 있는 듯 한 세월호의 아픔. 일부 매스컴에서는 잊지 않기 위해 지속적으로 그 아픔을 나누려는 노력과 진상규명을 위한 보도에서는 신뢰라는 말이 공허하기만 하다.

사랑은 온전한 내가 정성을 다해 내 마음(思)을 주는 것으로써 비록 그 사랑이 이뤄지지 못 할지라도 상처 입은 마음을 추스려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신뢰는 내가 믿고 당신에게 기대는 것으로써 그 신뢰가 쓰러지면 나 또한 쓰러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그래서 신뢰가 사랑보다 더 애절하고 간곡한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국어사전에도 신뢰를 ‘굳게 믿고 의지함’으로 정의하고 있다.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회. 생각해 보면 우리가 힘든 세상을 살아감에 참으로 든든한 말이다.

이 신뢰는 과연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믿음을 주는 사람과 사회는 그 말(言)이 정직해야 한다. 말은 곧 행동이고 습관이 된다고 한다. 잘못된 말이 습관으로 이어지면, 자신의 말에서 스스로의 잘못을 알지 못한다. 신뢰의 어린 싹은 말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 가정의 유아교육에서 출발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들 눈에 비치는 불신의 열매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된 것이었다면, 지금부터라도 우리 자녀들에게 건강한 미래를 물려주기 위하여 신뢰받는 부모, 신뢰받는 가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불필요한 농담이나, 매스컴 또는 SNS에서 범람하는 치졸한 말보다 사랑과 정이 담긴 내 가슴의 언어로 오늘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리의 어린 자녀들이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유인숙 울산시 여성회관/ 여성새로일하기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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