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회-4. 모반과 추억(1)
37회-4. 모반과 추억(1)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7.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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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궁성 밖에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 멀리서 함성소리가 들렸다. 어지러운 나라의 일을 생각하다 늦잠이 들었던 진수라니 한기는 그 함성소리에 잠을 깼다. 처음 희미하던 그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한기는 급하게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필모구라 하한기 휘하에 있던 준치산성의 군장 길마루지가 병졸들을 데리고 청패산성을 공격하여 대치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것이 전날 저녁 무렵이었다. 밤이라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아 걱정을 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새벽녘에 잠시 잠이 들었는데, 반란군은 밤새 청패산성을 함락시키고 이른 새벽 궁성에까지 진격해 왔다.

멀리서 와 -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그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윽고 그 소리가 궁성을 둘러쌌다. 모반군의 함성은 대단한 기세였다. 진수라니 한기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궁성 성첩에 올라갔다. 이미 수많은 병사들이 궁성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궁성 밖을 지키던 병졸들은 함성에 놀라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진수라니는 급히 성첩에서 내려와서 궁성을 지키는 병사들을 불러 모았다. 그 인원이 20여명이 채 되지 않았다. 한기는 이들에게 성문을 지키게 하고 궁성 호위군장인 명궁 능치시말을 불렀다.

능치시말은 왕을 호위하기 위해서 궁성 안에 상주하고 있는 군관이었다. 부왕이 멀리 기문국(남원가야)에 구원군으로 출정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버려져 있는 아이가 있어 데려와서 키웠는데, 그 아이가 활을 만들고 쏘는 재간이 뛰어나서 강 건너 나무에 울어대는 매미를 쏘아 맞출 정도로 뛰어난 명궁이 되었다. 그래서 궁성의 호위군관이 된 인물이었다.

“후원에 가서 빨리 연기를 피워 궁성의 위급함을 길모성과 황우산성에 알려라.”

길모성은 궁성의 외곽을 지키는 성으로 국왕의 친위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진수라니 한기는 성문을 지키는 병졸 하나를 불러 궁성 봉수대에 불을 지피게 했다. 봉수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진수라니는 명궁 능치시말을 데리고 어전 침소로 갔다.

부왕은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부왕은 최근 며칠 사이에는 눈에 띌 정도로 기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진수라니 한기가 아라국 다국 회의에 다녀오는 동안 부왕은 한 차례 앓아눕기까지 했다는 전언을 들었는데, 그 이후에도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기는 부왕이 반란군이 궁성에까지 진입했다는 것을 알면 충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궁성 밖의 소란한 상황을 다른 말로 둘러대고 내궁들에게도 바깥 상황을 부왕께 알리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한기 진수라니는 능치시말과 함께 성첩에 올라가서 몸을 숨겼다. 하한기 필모구라는 어떤 생각에서인지 아직 궁성 안으로 난입을 시도하지는 않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개 한 마리도 궁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끔 철저히 차단해라.”

길마루지 장군이 말을 탄 채 부하들을 호령했다. 그의 음성이 성첩에까지 울렸다.

글=이충호/그림=황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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